[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44] 나치가 독일인에 주입시킨 '그 무엇'

조선일보
  •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입력 2013.08.06 03:04

    김대식 KAIST 교수 사진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얼마 전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가 나치 정권이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헌법을 무력화시킨 방법을 사용해 일본 평화헌법을 개정하면 어떻겠냐고 말해 논란이 되고 있다. 독일에서 유년을 보낸 나로서 상당히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1933년 나치당은 (NSDAP·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 그러니까 '민족사회주의 독일노동당') 국회 과반수도 얻지 못했었다.(마지막 '민주주의' 선거 당시 33.1% 획득) 나치당은 결국 야당 의원 대부분을 체포한 후 1933년 2월 27일 국회의사당을 불 지른다. 온 나라가 혼란과 두려움에 빠진 사이, 특별법을 통과시켜 드디어 바이마르공화국 자체가 바이마르공화국을 없애버리는 상황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나치 역시 무엇보다 형식적 규칙 그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통적 독일인들이기에 독재 역시 '합법적'으로 만들려 했던 것일까? 하지만 '합법적 독재'란 단어 자체는 물론 논리적 모순이기에, 오늘날 독일 학자들은 나치의 정권 장악을 '절차적 쿠데타'라고 부른다.

    물론 아소 부총리는 나치도 아니고 지금 일본은 바이마르공화국도 아니다. 아소 총리가 도쿄 지요다 구에 있는 일본 국회에 불을 지를 일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정체성이다. 인간의 뇌는 끝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질문한다. 자신이 누구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있어야 최적화된 행동과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는 '나는 누가 되고 싶은가'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미래를 타인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정하려 하기 때문이다.

    1933년 2월27일 불타는 독일 국회의사당 사진
    1933년 2월27일 불타는 독일 국회의사당
    가끔 유럽 친구들이 "일본은 아시아의 독일이고, 한국은 아시아의 이탈리아"라는 말을 하곤 한다. '안전한 복지사회', '발달된 제조업'이 독일의 정체성이며 '멋지고 창의적인 국민'이 이탈리아의 정체성이라면 듣기 좋은 칭찬이겠다. 하지만 독일의 정체가 '비인간적 규칙주의'와 '인종차별'이라면 별로 좋은 이야기는 아닐 것이고, 한국이 이탈리아와 비슷한 이유가 '마피아'나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 같은 막장 정치인들 때문이라면 당연히 기분 나쁜 지적일 것이다.

    바이마르공화국의 치명적 문제는 역시 정체성이었다. 국민 개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서방 민주국가일까 아니면 민족의 우월함을 증명하려는 중세 국가일까? 1차 대전 후 독일은 현대 과학, 건축, 예술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나치는 눈에 보이는 성과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가 더 중요하다고 독일인에게 주입시켰고, 결국 독일 국민의 잘못된 선택은 8000만명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2차 대전 후 일본은 그 언제보다 더 잘살았고, 자유로웠으며 멋진 나라였다. 행복했던 일본 국민의 삶을 마치 '가축 같은' 행복이었다고 재해석하는 건 역사적으로 큰 오해이며, 미래 세대 불행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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