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수 국제부 기자

"한국 사람들은 일본에 콤플렉스가 있는 것 같아요."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에서 5년 전 1년간 연수할 때 대학원 정치학과 수업에서 중앙아시아 출신의 한 학생이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과거 역사 문제만 나오면 지나치게 일본에 공격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었다. '혼네(本音·본심)'를 잘 말하지 않는 배려심 많은 일본 학생들이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강의실에 있던 학생 대부분이 "한국이 문제"라는 데 공감하는 듯했다.

엊그제 일본 정부 각료 두 사람이 잇달아 '혼네'를 털어놨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은 독일 나치 정권이 바이마르 헌법을 무력화한 방법을 배워 개헌을 추진하자고 했다.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문부과학상은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한·일전에서 한국 응원단이 역사 문제 관련 플래카드를 내건 것에 대해 "한국의 민도(民度)가 문제"라고 비난했다.

나치를 배우자거나 이웃 나라 국민의 수준을 문제 삼는 상식 밖 이야기를 접하면서 문득 일본 대학 강의실 풍경이 떠오른 건 수시로 터져나오는 일본 정치인의 망언(妄言)이 일본 교육의 총체적 부실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모무라 문부상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가 3형제를 키우는 힘든 생활을 했지만 명문대를 졸업하고 오늘의 자리에 올랐다. 아소 부총리는 역대 일본 총리 두 사람을 외조부와 장인으로 둔 정치 명문가 출신이다. 일본 최고의 교육을 받은 두 사람의 수준이 '나치'와 '민도'라는 게 일본 교육의 문제점을 드러낸 것으로 보였다. 만일 유럽에서 나치 운운하거나 다른 나라 국민 전체를 모욕했다면 직(職)을 버려야 했을 것이다.

공중도덕 같은 기초 질서 지키기에서 일본 국민의 '민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어릴 때부터 받은 철저한 공민교육 때문일 것이다. 일본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다닌(他人)니 메이와쿠 가케루나'라는 말을 배운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마라'는 뜻이다. 아이들은 반복 교육을 통해 타인에 대한 배려 같은 공중 질서를 체득한다.

그런데 유독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 같은 명백한 역사의 과오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타국의 상처를 배려하도록 가르치지 않는 일본 교육의 문제점 때문이다. 요컨대 '다른 나라에 폐를 끼치지 마라'고 배우지 못한 것이다.

한국인이 일본에 갖는 감정은 '콤플렉스'가 아니라 '트라우마'에 가깝다. 범죄 피해자가 가해자의 그림자만 봐도 두려움을 느끼는 감정 같은 것이다. 콤플렉스는 원인이 자신에게 있지만 트라우마는 원인이 상대에게 있다. 나치를 언급하고 민도를 말하는 일본 정치인의 막말을 접하면서 한국인은 일제 군국주의의 그림자를 본다. 이를 두고 '콤플렉스'라고 하는 것은 말하는 이의 무지 또는 폭력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일본 국민의 수준 높은 민도는 한국인이 계속 배울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치인과 각료들의 '관도(官度)'랄까, '정도(政度)'는 일본 국민이 스스로 교정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