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악습, 깜깜이 예산 편성] [下] 기재부, 국회 예산처의 시정 요구 절반은 무시… 삭감 대상을 증액도

입력 2013.07.31 03:01

[예산 편성에 원칙이 없다]

씀씀이 줄이지 않기 위해 공기업 매각 등 수입 부풀려
미흡한 사업 예산 삭감 원칙, 스스로 정해놓고도 안 지켜
정치 실세 압력엔 쉽게 굴복… 밉보인 부처는 군기잡기 삭감

작년 말 박재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년 실질성장률을 4%로 잡았는데 문제 아니냐"는 여당 의원의 질문에 "1~2% 정도의 성장률 전망치 변동에 대해 세입예산 추계를 조정한 적이 없다"고 했다. 세수 결손이 크지 않고 문제가 없다는 말이었다. 결국 예산안은 수정 없이 통과됐다. 하지만 불과 다섯 달 만인 지난 5월 정부는 12조원대의 세입 결손이 났다며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기재부의 엉터리 성장률 전망과 세수 추계로 나라 살림에 큰 구멍이 난 것이다.

◇'예산 규모 부풀리기' 고질적 관행

이처럼 낙관적 성장률 전망에 기초한 '예산 규모 부풀리기'는 기재부의 고질적인 관행이다. 정부는 매년 세입 추계 때 이듬해 성장률을 전망하는데, 씀씀이를 줄이지 않기 위해 성장률을 일부러 높여 잡는다는 것이다.

2003년에는 성장률 전망치가 실제보다 3.2%포인트나 높았고, 2011년 1.3%포인트, 2012년에는 2.5%포인트 높았다. 작년에도 국제통화기금(IMF)과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이 올해 3.2~3.6% 성장을 전망했지만 정부는 4%를 고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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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 부족에 따른 적자국채 발행액. 국회가 시정 요구한 각종 예산에 대한 정부의 조치. 정부의 성장률 전망치와 실제 성장률. /그래픽=박상훈 기자
들어오지도 않을 돈을 세수로 잡아놓는 경우도 많다. 기재부는 작년 예산편성 때 기업은행(5조1000억원)과 산은금융지주(2조6000억원) 등 매각을 통해 8조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겠다고 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4000억원) 매각 건은 전년도에 국회가 "현실성 없다"고 삭감했는데 또다시 수입으로 올렸다. 그러나 몇 달 뒤 정부는 '매각이 불가능하다'며 손을 들어버렸다.

◇편성·심사 원칙도 잘 안 지켜

기재부는 예산편성과 심사 과정에서 스스로 정한 지침과 원칙을 깨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성과가 미흡한 사업은 이듬해 예산을 10% 이상 깎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예산을 증액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작년에 '미흡'이나 '매우 미흡' 평가를 받은 112개 사업 중 17개 사업의 예산이 올해 오히려 늘어났다. 외교통상부의 아세안 및 남아태 지역 국가와 교류협력사업은 미흡 평가를 받았지만 예산이 6.1% 증액됐다.

국회는 작년 결산을 통해 예산 과다 편성과 집행 실적 부진, 유사·중복 사업 등 202건에 대해 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기재부는 93건의 예산액을 늘리고 11건은 예전 규모로 편성했다. 국회의 지적도 무시한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미흡 평가를 받았더라도 그 사유를 해소하면 예산 증액이 가능하다"고 했다.

예산 편성의 원칙과 문제점.
기재부는 정치권·지자체·민간기업 등의 예산 로비에 흔들리지 않고 타당성 중심으로 예산을 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치권 실세가 압력을 넣으면 타당성 없는 사업 예산도 넣어주는 '고무줄 심사'를 한다는 지적이다. 중앙부처의 한 간부는 "기재부에 밉보이면 장관 중점 사업 예산을 뭉텅이로 깎아서 군기를 잡곤 한다"며 "예산실 담당자가 부처에 '왜 안 찾아오느냐'고 은근히 압박하기도 한다"고 했다.

국회와 '딜(deal·거래)'을 위해 예산을 미리 부풀리거나 깎아 놓는 편법을 쓰기도 한다. 국회의원들의 지역·민원성 '쪽지예산'을 반영하기 위해 몇몇 항목 예산을 부풀려 놓은 뒤 나중에 삭감용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숨겨진 삭감 예정 예산은 통상 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하지만 "정치권과 부처들의 온갖 예산 요구와 압박에 시달리다 보니 일부 문제는 있을 수 있다"면서도 "국가 재정 건전성을 유지한다는 큰 원칙에 따라 편성·심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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