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외과醫로 돌아가… 금연·걷기 '전도사' 계속할 것"

입력 2013.07.29 02:58

[박재갑 前 국립암센터 원장, 32년 서울대 의대 교수직 정년퇴임]

52세에 국가 癌 관리사업 주도
욕 안먹으려 매일 '25시간' 일해… 흡연규제도 그가 이룬 성과
"건강 비결요? 금연과 걷기… 5년 전부터 내 신발은 운동화"

박재갑 교수 명함 사진
서울대 의대 외과 박재갑(65) 교수가 만나는 사람마다 건네는 명함<작은 사진>은 독특하다. 직함과 사무실 전화번호가 없다. 먼저 만화로 그린 자신의 캐리커처가 담배를 부러뜨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명함 맨 위에는 '담배 제조 및 매매 금지'라는 구호가 커다랗게 쓰여 있다. 그 밑에는 운출생운(運出生運)이라는 문구를 적어 놨다. '운동화 신고 출근하고, 생활 속에서 운동하자'는 뜻이다. 그가 국립암센터 초대 원장(2000년)을 맡으며 펼친 금연 운동, 국립중앙의료원장(2010년)을 역임하며 시작한 생활 속 운동 캠페인을 명함 한 장에 압축해 놓은 것이다.

박 교수는 오는 8월 말 서울대 의대 32년의 교수직을 마치고 정년 퇴임한다. 그는 "1964년 청주에서 올라와 지금 정독도서관 자리의 옛 경기고를 다닌 것부터 치면 50년 종로구 생활을 마감하는 것"이라며, "아버지가 기술을 배워야 배를 곯지 않는대서 아무 생각 없이 의대에 들어왔는데 여기까지 오게 됐다"며 웃음 지었다. 그는 3명의 의사 사위를 두고 있으며, 늦둥이로 낳은 막내아들이 서울대 의학과 3학년으로 의업(醫業)의 대를 잇고 있다.

그가 정년 퇴임을 앞두자 의료계에서는 '민간 대학병원 의료원장으로 간다', '대학 총장으로 영입된다' 등의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그의 퇴임 후 행보는 자신이 세운 국립암센터로 돌아가는 것이다. 공직은 할 만큼 했다는 의미다. 제자가 대장암 센터장으로 있는 곳에서 화·수·목요일 진료하고 수술하는 '일반 외과 의사'로 지낼 예정이다. 그는 "지금까지 7000여건의 대장암 수술을 해왔다"며 "진료하고 수술하는 것은 내가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날들에는 전국을 돌며 금연과 운동 캠페인을 벌여 '건강 봉사'를 할 계획이라고 했다.

지난 23일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박재갑 전 국립암센터원장은 “내 건강 비결은 운동화”라며 “일상생활 속에서 운동화 신고 열심히 걸으라”고 조언했다. /이진한 기자
박 교수가 걸어온 이력은 화려하다. 40대 초반에 한국세포주은행을 설립해 이사장을 맡았고, 1995년에는 원로 교수들을 제치고 40대에 파격적으로 서울대 암연구소를 이끌었다. 52세에는 국립암센터 초대 원장으로 국가 암 관리 사업을 주도했다. 그는 "젊은 놈이 뭘 할 줄 알겠느냐는 욕 안 먹으려고 열심히 하다 보니 하루 25시간 일하는 일 중독자라는 말을 듣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대 암연구소장 재직 시절,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찾아가 암연구소 건립 비용으로 400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400억원 상당)를 기부받아온 일은 유명한 일화다. 그때는 삼성서울병원에도 암센터가 없었다. 박 교수는 암연구소 강당을 '이건희 홀'로 이름 지었다.

그는 금연 운동가로서, 흡연 규제가 사회 전반에 이뤄지도록 한 최대 공로자다. 국립암센터 원장 시절, 방송사와 신문사 사장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방송과 신문에 흡연 장면이 나오지 않도록 했다. 지난해에는 담배 제조와 판매가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국가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버젓이 발암물질인 담배를 만들어 파는 게 말이 되나요? 나는 강연 다닐 때마다 '여러분 국가를 믿지 마세요. 담배를 피우게 해서 국민 건강을 망치게 하고 있으니까요!'라고 말합니다. 헌법재판관님들! 우리나라에서 흡연으로 매년 5만여명이 죽는 전시 상황인데 이걸 그냥 놔두게 할 건가요?"

요즘은 육사·해사·공사 모든 사관생도와 임관을 앞둔 ROTC 생도를 대상으로 금연 교육 강의를 하고 다닌다. 지금까지 8000명의 젊은 금연 운동가를 양성한 것이다. 10여년 전 위암·대장암·간암·유방암·자궁경부암 등 국가 조기 암검진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도 그가 장·차관과 국회의원들이 화장실 갈 때도 쫓아다니며 설득해 예산을 받아내 이룬 결과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암환자들이 조기암 상태로 발견돼 잘 낫는 걸 보면 기분이 흐뭇해집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내가 한국인의 수명을 늘리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의사라고요, 허허! 암 정복은 명의(名醫)가 하는 게 아니라 정기 검진을 열심히 하는 국민이 하는 것입니다."

그는 5년 전부터 매일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편안한 구두처럼 보이는 그의 검은색 트레킹 신발은 쉬는 날이 없다. 건강 비결을 물었다. "평일 걷기, 주말 등산을 합니다. 주례를 설 때나 청와대에서 열리는 회의 갈 때도 운동화 신고 가요. 여러분, 운동화 신고 열심히 걸으세요. 운출생운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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