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인간의 평화 사랑을 회의하게 하는 中東

입력 2013.07.26 03:03

박영석 국제부 차장
박영석 국제부 차장
세계 각지의 전쟁(내전 포함) 소식들을 다루다 보면 자연스레 드는 의문이 하나 있다. 전쟁은 정말 인간의 악마적 본성에서 태동하는가? '전쟁 행위는 유전형질이냐, 획득형질이냐'의 문제는 고고학·생물학·심리학·뇌과학에 걸쳐 오랜 논쟁거리였다.

'살해학(killology)'이란 조어를 만든 미 예비역 중장이자 심리학자 데이브 그로스먼(57)은 미 육군사관학교·연방수사국(FBI) 교본으로도 쓰인다는 저서 '살인의 심리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역사적으로 사선(死線)에 선 병사 중 다수가 총을 쏘지 않았다. 대의(大義)·조국·전우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실망스럽지만, 그들의 고귀한 성품은 자랑스럽다." 죽임에 대한 두려움과 양심의 가책이 적을 겨눴던 총구를 거두고, 적영(敵影) 속 공포·자책감은 이송되거나 귀향해 전장(戰場)을 떠난 뒤에도 정신적 외상으로 악화한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에 참전했던 미 예비역 중장 겸 전쟁사학자 새뮤얼 마셜(1900~77)은 2차대전 참전 군인 면접 조사를 토대로 "전쟁 당시 상관의 격발 명령에 응한 미군 보병 비율은 20%에 불과했다"는 내용을 담은 책 '사격을 거부한 병사들'을 1947년 출간했다. 타인을 죽이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며 군인들이 결정적 순간 병역 거부자가 되는 것은 자괴(自愧) 때문이라는 설명은 당시로선 큰 충격이었다.

앞서 두 전쟁 전문가의 견해는 "전쟁은 천성이 아니다" 쪽이지만, "전쟁은 우리 본성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미국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84)의 이론에 학계는 더 동조적이었다.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호전(好戰)은 인간 본성이 아니다"는, 대세를 거스른 실증적 연구 결과를 실었다. 핀란드 아보아카데미대학 인류학자들이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21개 원시부족 사회를 관찰한 결과다. 연구진은 가정 내 불화, 공개 처형, 집단 간 다툼 등으로 발생한 모든 피살자 중 '전쟁'에 따른 희생자 비율이 34%였고, 21개 수렵·채취 부족 중에서도 유독 호전적인 호주 북부 섬 원주민 티위족(族)을 제외하면 전쟁으로 사망한 이의 비율은 15% 수준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영장류 연구자들은 '전쟁의 기원'을 유인원에게서 좇았다. 여기서도 유전이냐 학습이냐가 논란이 됐다. '침팬지 대모(代母)' 제인 구달은 탄자니아 침팬지들이 편싸움 중 상대편 젖먹이를 빼앗아 죽이거나 상대편을 잡아먹는 모습에서 인간에 내재한 전쟁 본능의 진화론적 원천을 포착했다. 반면 콩고공화국의 침팬지를 탐사한 미국 연구진은 그들 사회에서 평화로운 분위기만을 읽었다. 이후 학자들은 삼림 벌채로 거주 밀도(density)가 높아진 탄자니아 침팬지는 호전성이 커진 반면, 생활환경이 넉넉한 콩고공화국 침팬지는 그렇지 않았다는 타협적 결론을 도출했다.

성악설을 부정한 듯한 학계 보고가 무색하게, 2년 4개월간 포연에 갇힌 시리아에서, 군부 과도정권 치하의 이집트에서, 테러 조직 알카에다가 발호하는 이라크에서 희생자 발생 소식이 연일 추가되고 있다. 인간이 본디 싸움꾼으로 태어난 건 아니라는 과학적 성과를 희망으로 삼기란 요막한 일이다. 현실에 부딪힌 허튼 희망(false hope)들이 나뒹굴고 있다. '희망이 오히려 더 힘들게 한다'는 게 이런 경우 같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