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 베스트셀러는 김홍신 소설 '인간시장'이었다. 청년 '장총찬'이 인신매매를 비롯해 사회악을 저지른 집단을 응징하는 이야기였다. 1988년 송지나 극본, 김종학 연출로 TV 드라마 '인간시장'이 나왔다. 멜로와 사극이 쥐고 있던 안방극장에서 드물게 사회성 짙은 액션극이어서 남자 시청자도 TV 앞에 바투 다가앉았다. 그때 만났던 김종학 PD는 30대 후반이었다. "TV 드라마도 동시대 정치·사회 현실을 그려야 한다. 앞으로 70~80년대 학생운동권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김종학·송지나 콤비는 1991~ 92년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일제 강점기부터 광복 직후까지 수난의 역사를 그려 시청률 44%를 기록했다. 두 사람은 3년 뒤 '모래시계'를 내놓았다. 고교 동창이었지만 검사와 조폭으로 다른 길을 걷는 두 남자, 부잣집에서 태어나 학생운동에 뛰어든 여자. 세 사람이 얽히고설키는 인생행로에 광주의 5월을 비롯한 80년대 상황을 뒤섞은 드라마였다. 절제된 대사와 섬세한 영상미, 빠른 이야기 전개로 단숨에 시청자들을 빨아들였다.

▶첫 회 30%로 시작한 '모래시계' 시청률은 64%까지 치솟았다. 사람들을 일찍 집으로 불러들이는 '귀가 시계'라는 말도 나왔다. 드라마에 서정적으로 등장한 강릉 정동진은 이내 연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여주인공 경호원의 검도 솜씨가 멋지다고 해서 검도장 수련생이 크게 늘기도 했다. 그러나 안방에 걸맞지 않은 폭력 장면이 잦아 눈살을 찌푸린 시청자도 적지 않았다. 조폭을 미화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김종학은 독립 프로덕션을 차려 여러 드라마를 성공시켰지만 숱한 어려움도 겪었다. 제작비 400억원을 들여 드라마를 만든 뒤 자금난에 시달렸고 출연료도 주지 못해 검찰 수사까지 받았다. 홀로 고심하던 그는 지인들에게 "내가 한 편의 드라마를 찍는 것 같다"며 비통해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세 평 고시텔에서 쓸쓸하게 삶의 무대 밖으로 떠나갔다.

▶김종학의 마지막 선택은 우리 드라마산업의 뒤틀린 구조 탓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외주(外注) 제작사의 기반이 허약하고 스타와 작가가 지나친 출연료·원고료를 받는 현실도 다시 도마에 올랐다. 올 들어 김종학까지 네 명의 제작자와 기획사 대표가 목숨을 끊은 것도 무심코 지나칠 일이 아닌 것 같다. 김종학은 한류(韓流)의 바탕이 된 TV 드라마 연출에 온몸을 던졌다가 현실의 벽 앞에 무릎 꿇고 말았다. 예순두 살로 끝낸 그의 인생 드라마가 슬픈 잔상(殘像)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