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 난투사](29)대구 관중들, 현대의 ‘이승엽 고의 볼넷’에 분노 폭발

  • OSEN
    입력 2013.07.23 13:10




    이승엽은 1997년에 32홈런 기록으로 첫 홈런왕에 올랐다. 모처럼 대타자의 등장에 관중들은 환호했고, 당연하게도 1998년에는 이승엽(당시 22살)에게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 수립의 기대가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승엽은 8월 26일 시점에서 홈런 2위 타이론 우즈(당시 두산. 29개)보다 7개나 많은 36홈런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 무렵 상대 팀들의 집중 견제와 볼넷 남발로 페이스가 뚝 떨어지긴 했으나 기록 경신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했다. 이승엽에 대한 견제는 수치로도 명확하게 나타난다.

    이승엽은 7월까지 12타석에 1개꼴로 홈런을 양산해냈으니 8월 들어서는 37타석에 1개꼴로 부쩍 줄어들었다. 그 대신 고의볼넷은 8.45타석에 1개꼴(7월 이전)이었던 것이 5.89타석에 한 개꼴(8월)로 늘어났다. 다른 팀 투수들의 질시와 견제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수치이다.

    소동이 일어난 8월 26일은 이승엽이 장종훈이 1992년에 세웠던 41홈런 고지를 저만치 바라보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그런 판이었으니 대구 팬의 분노가 끓어 오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노릇일 터. 

    그 그해 한국시리즈 패권을 거머쥐었던 현대 유니콘스는 강했다. 현대는 삼성과의 13차전까지 상대전적에서 10승 3패로 압도적 우위를 지키고 있었다. 모 기업의 경쟁 심리까지 겹쳐 그해 양팀 간 맞겨룸은 유난히 치열했다.

    시즌 14차전이 열린 대구구장. 1만 10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삼성은 외국인 투수 베이커를 선발로 내세웠다. 하지만 베이커는 1⅔이닝 동안 4안타, 4사사구를 내주며 뭇매를 맞고 6실점, 일찌감치 대세가 갈렸다.
    베이커는 2회 초 2사 만루에서 현대 쿨바에게 싹쓸이 2루타를 얻어맞은 후 김준표 주심으로부터 커버플레이도중 욕설을 내뱉었다는 이유로 퇴장을 명령받았다.

    양팀은 1회 초 현대 선두타자 전준호 타석 때부터 빈볼시비와 볼 판정을 놓고 얼굴을 붉혀 불길한 조짐이 일었다.

    에이스 정민태를 선발로 내세웠던 현대는 3회까지 이미 12-3으로 크게 앞서 승부의 추는 초반에 기울었다. 지고 있는 쪽에서는 부글부글 끓었을 터. 아니나 다를까, 현대가 19-4로 무려 15점이나 앞서 있던 8회 말에 4번째 투수 안병원이 이승엽을 고의 볼넷으로 걸러 대구 팬들의 분노에 불을 질렀다.

    그 대목에서 성난 대구 관중들은 물병이나 깡통, 휴지 뭉치 따위를 가리지 않고 그라운드로 마구 집어던졌다. 그러잖아도 속이 상해 있던 관중들을 자극했으니 그냥 넘어갈리 만무했다.

    그 해 8월 27일치 <일간스포츠> 1면에는 ‘심판-선수-감독, 98프로야구 판 깨기 경쟁하나’라는 제하에 이승엽 고의 볼넷으로 촉발된 대구 팬 소동을 비판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당시 기사를 발췌 인용하자면, ‘빈볼 시비, 애매한 판정, 15점이나 앞선 경기 종반 상대의 김을 더 빼놓는 고의 4구. 프로야구는 일부 야구인들의 소아병적인 발상과 상황인식 부족으로 인해 점점 팬들에게 외면당해. 팬을 가장 무서워해야 할 프로 스포츠로서 관중들의 눈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팀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위가 지난 26일 대구경기(삼성-현대)서 속출, 심판의 자질 부족과 함께 위기에 놓인 프로야구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1998년 9월 2일치 <동아일보>에 기고한  ‘제 살 깎는 스타 죽이기 이제 그만’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우리 프로야구는 이승엽이란 슈퍼스타가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 경신이란 좋은 재료를 지니고 있음에도 상대 팀들의 지나친 견제로 축제에 찬물을 끼얹고 있어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정정당당하지 못한 경기, 승부는 언제나 관중의 분노를 사기 마련이다. 그 사건이 아주 좋은 본보기다.

    1998년에 이승엽은 결국 우즈에게 앞지르기를 허용, 4개 차(42-38)로 홈런왕 자리를 빼앗겼고, 동시에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도 우즈가 세웠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사진 위>성난 대구 관중들이 마구 집어던진 물병 따위의 오물로 어지러워진 대구구장에서 삼성 구단 관계자들이 치우고 있는 모습이다. 작은 사진은 소동의 원인을 제공한 김준표 주심, 삼성 외국인 투수 베이커, 현대의 김재박 감독(왼쪽부터). (제공=일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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