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은 1997년에 32홈런 기록으로 첫 홈런왕에 올랐다. 모처럼 대타자의 등장에 관중들은 환호했고, 당연하게도 1998년에는 이승엽(당시 22살)에게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 수립의 기대가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승엽은 8월 26일 시점에서 홈런 2위 타이론 우즈(당시 두산. 29개)보다 7개나 많은 36홈런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 무렵 상대 팀들의 집중 견제와 볼넷 남발로 페이스가 뚝 떨어지긴 했으나 기록 경신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했다. 이승엽에 대한 견제는 수치로도 명확하게 나타난다.

이승엽은 7월까지 12타석에 1개꼴로 홈런을 양산해냈으니 8월 들어서는 37타석에 1개꼴로 부쩍 줄어들었다. 그 대신 고의볼넷은 8.45타석에 1개꼴(7월 이전)이었던 것이 5.89타석에 한 개꼴(8월)로 늘어났다. 다른 팀 투수들의 질시와 견제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수치이다.

소동이 일어난 8월 26일은 이승엽이 장종훈이 1992년에 세웠던 41홈런 고지를 저만치 바라보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그런 판이었으니 대구 팬의 분노가 끓어 오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노릇일 터.

그 그해 한국시리즈 패권을 거머쥐었던 현대 유니콘스는 강했다. 현대는 삼성과의 13차전까지 상대전적에서 10승 3패로 압도적 우위를 지키고 있었다. 모 기업의 경쟁 심리까지 겹쳐 그해 양팀 간 맞겨룸은 유난히 치열했다.

시즌 14차전이 열린 대구구장. 1만 10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삼성은 외국인 투수 베이커를 선발로 내세웠다. 하지만 베이커는 1⅔이닝 동안 4안타, 4사사구를 내주며 뭇매를 맞고 6실점, 일찌감치 대세가 갈렸다.
베이커는 2회 초 2사 만루에서 현대 쿨바에게 싹쓸이 2루타를 얻어맞은 후 김준표 주심으로부터 커버플레이도중 욕설을 내뱉었다는 이유로 퇴장을 명령받았다.

양팀은 1회 초 현대 선두타자 전준호 타석 때부터 빈볼시비와 볼 판정을 놓고 얼굴을 붉혀 불길한 조짐이 일었다.

에이스 정민태를 선발로 내세웠던 현대는 3회까지 이미 12-3으로 크게 앞서 승부의 추는 초반에 기울었다. 지고 있는 쪽에서는 부글부글 끓었을 터. 아니나 다를까, 현대가 19-4로 무려 15점이나 앞서 있던 8회 말에 4번째 투수 안병원이 이승엽을 고의 볼넷으로 걸러 대구 팬들의 분노에 불을 질렀다.

그 대목에서 성난 대구 관중들은 물병이나 깡통, 휴지 뭉치 따위를 가리지 않고 그라운드로 마구 집어던졌다. 그러잖아도 속이 상해 있던 관중들을 자극했으니 그냥 넘어갈리 만무했다.

그 해 8월 27일치 1면에는 ‘심판-선수-감독, 98프로야구 판 깨기 경쟁하나’라는 제하에 이승엽 고의 볼넷으로 촉발된 대구 팬 소동을 비판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당시 기사를 발췌 인용하자면, ‘빈볼 시비, 애매한 판정, 15점이나 앞선 경기 종반 상대의 김을 더 빼놓는 고의 4구. 프로야구는 일부 야구인들의 소아병적인 발상과 상황인식 부족으로 인해 점점 팬들에게 외면당해. 팬을 가장 무서워해야 할 프로 스포츠로서 관중들의 눈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팀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위가 지난 26일 대구경기(삼성-현대)서 속출, 심판의 자질 부족과 함께 위기에 놓인 프로야구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1998년 9월 2일치 에 기고한  ‘제 살 깎는 스타 죽이기 이제 그만’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우리 프로야구는 이승엽이란 슈퍼스타가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 경신이란 좋은 재료를 지니고 있음에도 상대 팀들의 지나친 견제로 축제에 찬물을 끼얹고 있어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정정당당하지 못한 경기, 승부는 언제나 관중의 분노를 사기 마련이다. 그 사건이 아주 좋은 본보기다.

1998년에 이승엽은 결국 우즈에게 앞지르기를 허용, 4개 차(42-38)로 홈런왕 자리를 빼앗겼고, 동시에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도 우즈가 세웠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성난 대구 관중들이 마구 집어던진 물병 따위의 오물로 어지러워진 대구구장에서 삼성 구단 관계자들이 치우고 있는 모습이다. 작은 사진은 소동의 원인을 제공한 김준표 주심, 삼성 외국인 투수 베이커, 현대의 김재박 감독(왼쪽부터). (제공=일간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