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민당이 21일 열린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했다. 중의원은 자민당, 일본유신회, 우리모두의당이 결집하면 헌법 개정 의원 정족수 3분의 2 확보가 가능하고, 이제는 참의원도 그럴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본 우경화는 본격 가도에 들어선 지 오래되었지만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우익 세력의 염원인 헌법 개정 움직임도 빨라질 것이다.
맥아더 군정 치하인 1947년 공표된 일본 헌법은 일본이 다시는 군국주의로 회귀하지 못하도록 헌법 제9조에 '대못'을 박았다. 국제사회의 분쟁에 무력 개입을 하지 못하도록 미국이 아예 헌법에 명시해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우익 세력은 헌법 개정에 대한 염원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3년 필자가 미국 유학 첫해에 쓴 학기 논문이 '일본 헌법 제9조의 개정 가능성'이었다. 미국 도서관에 비치된 'Japan Quarterly'라는 학술 잡지에서 다룬 '일본 헌법의 개정'이란 논문은 일본이 오래전부터 헌법 개정 작업을 진행해 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본의 우익 세력은 '언제 헌법을 개정할 수 있을까' 하는 염원을 품고서 분위기가 성숙하기만 기다려 왔다.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는 국민 여론의 반대가 심했다. 1990년 대 초까지 헌법 개정에 대한 국민의 여론조사를 보면 단 한 번 예외를 제외하고 늘 반대가 많았다. 단 한 번 찬성이 반대보다 좀 많았던 것은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직후의 조사였다. 냉전 시대 일본의 '가상 적(敵)'은 소련이었기에 과민 반응을 보인 것이다. 당시만 해도 참혹한 전쟁을 겪은 세대가 일본 사회의 주류였기에 '헌법을 개정했다가 또 전쟁에 휘말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일본 사회의 기저에 깔려 있었다.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일본 헌법 개정을 둘러싼 환경이 달라진 이유는 세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는 국제 환경의 변화다. 냉전 시대의 가상 적 소련이 이제는 북한과 중국으로 바뀌었다. 1998년 8월 31일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자 외부 위협에 민감한 일본 국민의 민족성을 자극했다. 여기에 중국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급증강해 센카쿠 열도까지 넘보는 형국이 되자 일본 국민이 뭉치기 시작했다. 만약 센카쿠 영토가 중국 수중에 들어가는 날이면 일본은 곧장 군사 재무장에 들어갈 것이다.
둘째는 일본 국민의 주류가 2차 세계대전에서 전쟁의 참상을 겪은 세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모병제 국가 일본의 남성들은 군대 경험이 없어 전쟁의 참상을 모른다. 반면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이라는 자긍심은 강하다. 이들이 사회의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 그들은 성장기 학습 과정에서도 군국주의의 참상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셋째는 선거 제도 변화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일본 자민당처럼 30년 넘게 장기 집권한 나라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것은 한 선거구에서 3~5명을 뽑는 중선거구제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권을 야당으로 넘겨줄 수 있는 위험성을 알고도 소선거구제로 바꾸었고 그로 인해 의원 정족수 3분의 2를 확보하는 연립 정권이 가능하게 됐다.
이제 일본 국민 과반수가 헌법 개정에 반대하여 헌법 개정이 무산되는 데 희망을 걸 수밖에 없다. 일본이 헌법 개정에 성공하면 동북아시아는 군비 경쟁이라는 격랑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일본 국민이 헌법 개정을 하지 못하도록 성숙한 판단을 하는 데 미국, 한국이 함께 노력할 필요가 있다.
입력 2013.07.2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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