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노충현(43)은 '그림 속에 포착된 것은 순간이지만, 좀 더 오래 보는 이의 마음속에 잔상으로 남기를' 바라며 그림을 그린다. 복잡하고 거대한 도심 건물은 그의 관심 밖이다. 그는 늘 눈 쌓인 강변이나 아무도 없는 체육공원의 농구대, 물이 넘치는 장마철의 유수지 같은 주목받지 못하는 일상의 장소를 들여다본다. 개념·설치 등 양식적 작업이 유행하면서 전통적 회화는 실종돼버린 시대, 꿋꿋하게 자기만의 양식을 개발하고 그려온 몇 안 되는 '화가'다.
이달 31일까지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노충현 개인전 '살풍경(Prosaic Landscape)'에 그의 올해 신작 25점이 걸렸다. 몰입하려면 한참 시간을 갖고 바라봐야 하는 일종의 '심리적 거리'를 지닌 풍경이다. 작가는 폭설이 내린 풍경은 청록색, 장마 풍경은 붉은색 톤으로 그림으로써 장면이 가진 정보를 탈색하고 삭제한다. 그 위에 작가의 심상이 덧입혀지면 캔버스 위에는 전혀 새로운 풍경이 드러난다.
그는 "회화적으로 담아내려 애쓸수록 풍경의 '실제'는 달아나버렸다. 현실 속 풍경이지만 그로부터 벗어나는 그림을 그리려 했다"고 말했다. (02)735-8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