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현의 문학산책] 당신이 읽는 소설이 당신은 누구인지 알려준다

    입력 : 2013.07.16 03:05

    여름 서점가의 소설가 3파전
    서정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 知的 오락 소설은 댄 브라운, 현실 비판의 寓話는 정유정
    입맛 따라 고르되 이왕이면 골고루 맛보면서 여름을 나야

    박해현 논설위원 사진
    박해현 논설위원

    2008년 세계경제가 위기에 빠졌을 때 일본에선 80년 전 프롤레타리아 소설이 재조명돼 베스트셀러가 됐다. 일본 공산당원이었던 작가 고바야시 다키지가 1929년 발표한 소설 '게공선(蟹工船)'이 느닷없이 50만부 넘게 팔렸다. 바다에서 게를 잡아 통조림으로 가공하는 '게공선'의 노동자들이 열악한 작업 조건과 착취에 시달리다 투쟁한다는 소설이다. 언론에선 정규직 취업이 힘든 청년 세대가 '게공선'을 읽으며 분노를 표출한 현상이라고 풀이했다.

    몇 해가 지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에세이에서 '게공선' 부활을 맹랑하게 언급했다. "그런데 학대받은 자의 시점에서 세계를 바라볼 거라면 차라리 '게'의 입장에서 본 '게공선'을 써보면 어떨까 싶었다. 물론 노동자도 가엾지만 통조림이 된 게가 더 가엾지 않나?" 그러나 그는 소설을 쓰지 못했다. 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게 어려웠고, '사상성(思想性)이 제로'라고 엄살을 떨었다. 이처럼 '색채'가 없는 작가 무라카미가 올해 새 장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냈다. 얼마 전 우리말로 번역돼 베스트셀러 선두를 달리고 있다. 뚜렷한 개성이 없이 '회색인'으로 사는 서른여섯 살 남자가 주인공이다. 젊은 날의 상처를 뒤늦게 치유한 뒤 거듭나는 '30대를 위한 성장소설'이다.

    올해 예순네 살 무라카미는 지난 30여년 동안 소설을 쓰면서 대부분 30대 남자를 주인공으로 삼아왔다. 대도시에서 홀로 생활하는 주인공들은 내면에선 과거에 잃어버린 존재를 찾아다닌다. 그들은 꿈과 현실 사이를 왕복한다. 꿈을 통해 미래를 보는 게 아니라 과거의 욕망을 만난다. 꿈만 꿀수록 그 욕망을 실현할 기회를 얻지 못해 무기력해진다. 그들은 꿈속에서 또 꿈을 꾸듯이 현실을 산다. '분명히 현실인데 현실이 가져야 할 무게가 없다'고 한다. 그런 남자들이 어느 날 여자를 만난다. 무라카미는 "내 소설에서 여자는 영매(靈媒)"라고 해왔다. 그의 소설에서 여자는 꿈과 현실을 잇는 역할을 한다. 요즘 잘 팔리는 그의 소설 '색채가 없는…' 역시 그런 '하루키 랜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대작 '1Q84'가 성취한 문학성에 비하면 말랑말랑하게 읽을 소품(小品)이다.

    박해현의 문학산책 일러스트
    일러스트-김현지 기자
    미국 작가 댄 브라운의 '인페르노'도 독자를 끌어들인다. 단테의 '신곡(神曲)'을 둘러싼 역사적 사실과 텍스트 해석을 바탕으로 숨 가쁘게 전개되는 팩션이다.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지옥은 바이블에서 나온 게 아니라 단테가 쓴 '신곡'의 지옥편이 빚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다빈치 코드'처럼 교황청을 둘러싼 음모론을 그리지 않는다. 인구가 이대로 늘어나다간 인류가 단테의 지옥 같은 세계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하는 소설이다. 주인공이 인류를 지옥에서 구하는 과정을 좇아가면서 피렌체 구석구석을 상상 여행하는 길도 제시한다. 독자가 인터넷으로 소설 속 문화 유적과 예술 작품의 이미지를 찾아보면 더 재미있다. 작가는 평소 소설의 오락성을 강조해왔다 "나는 독자가 한 문장을 두 번씩 읽지 않도록 가능한 한 명료하게 쓴다"고 큰소리쳤다.

    한국 소설가 중엔 정유정이 장편 '28'로 독자 확보에 성공하고 있다. 사람과 개가 똑같이 걸리는 전염병에 사로잡힌 도시를 그린 소설이다. 바이러스를 내세웠지만 의학과 과학을 동원한 스릴러는 아니다. 열다섯 살에 5월 광주를 체험한 작가의 트라우마가 깔렸다. 도시를 포위한 군대와 시민의 충돌 묘사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우화 소설이다. 인물의 행동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문체의 속도감이 숨 가쁘다. 무라카미가 '학대받는 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소설'을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정유정은 진지하게 동물의 관점을 택했다. 인간의 폭력에 저항하는 개가 주요 인물처럼 그려진다. 그런 개가 볼 때 인간은 인간에게도 폭력을 가하는 동물이다. 단테의 지옥 못지않은 현실이 우리 사회의 내부에 숨어 있지 않느냐고 묻는 소설이다. 본격 문학에 비해 오락성을 더 강조한 장르 문학이다. 하지만 한국형 장르 문학은 외국에 비해 사회성을 더 중시해야 주목받는 게 사실이다.

    올여름 서점가에선 이처럼 대중성을 갖춘 소설이 3파전을 벌인다. 소설이 자기 성찰의 서정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독자에겐 '색채가 없는…'이 어울린다. 소설은 지식과 정보도 줘야 한다는 독자는 '인페르노'를 고를 만하다. 소설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그린 이야기여야 한다는 독자는 '28'에 공감하기 쉽겠다. '당신이 먹는 음식을 말하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는 말이 있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고른 소설이 당신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지 않을까. 편식이 나쁘듯 소설 읽기도 한쪽으로 쏠리면 좋지 않다. 과식은 몸에 좋지 않지만 소설은 골고루 맛볼수록 정신 건강에 좋다. 다행히 올여름 서점가엔 소화하기 쉬우면서 나름대로 솜씨가 좋은 소설 삼총사가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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