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에 하루키, 정유정 데려갑니다

    입력 : 2013.07.13 03:02

    직장인 2055명에게 여름 휴가철에 읽을 책 물었더니

    책은 어쩌면 당신이 살 수 있는 가장 값싼 휴가다. 직장인은 올여름 책 중에서도 소설을 장바구니에 쓸어담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정유정의 ‘28’, 댄 브라운의 ‘인페르노’, 김진명의 ‘고구려’, 미야베 미유키의 ‘솔로몬의 위증’…. 본지가 교보문고 직장인 회원 2055명을 대상으로 ‘여름 휴가철에 읽을 책 한 권’을 주관식으로 묻자 이렇게 소설이 1~5위를 점령한 것이다. 여름 시장에서 전통의 강자였다가 자존심을 구겼던 소설 입장에선 2010년 이후 3년 만의 명예 회복이다.                                                         -편집자-


    올해 들어서도 소설은 부진했다. 상반기(1~6월) 종합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소설은 두 권. 프랑수아 를로르의 '꾸뻬 씨의 행복여행(2위)',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4위)'이 에세이와 자기계발서 틈에서 간신히 체면치레를 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 설문조사를 보면 여름부터 판세가 뒤집힐 조짐이다. 문자 그대로 소설의 압승이다.

    이진희 TV조선 기상캐스터가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소설을 읽고 있다.
    올여름엔 어떤 책을 여행 가방에 담아 떠날까. 이진희 TV조선 기상캐스터가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소설을 읽고 있다. 바닥에는 이번 설문 조사에서 직장인이 많이 꼽은 책들이 쌓여 있다. /채승우 기자
    소설의 일방적인 승리

    직장인 2055명 중 156명(8%)이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을, 111명(5%)은 정유정의 '28'을 읽겠다고 답했다. 댄 브라운이 4년 만에 내놓은 신작 '인페르노', 김진명이 2011년부터 5권 펴낸 연작 소설 '고구려'도 60명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 응답 수를 기준으로 20위까지 넓혀도 소설이 17권이다. '삼국지' '그리스인 조르바' '토지' 등 스테디셀러는 물론 '위대한 개츠비' '레 미제라블' 같은 스크린셀러도 존재감을 보여줬다.

    하루키와 정유정은 책장이 바삐 넘어가는 '페이지 터너(page-turner)' 작가로 자리를 굳힌 느낌이다.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은 제목이 20음절로 길어서인지 '하루키 신작'이라고만 쓴 답안이 많았다. 정유정의 '28'도 전작 '7년의 밤'과 헷갈렸는지 '28년' 또는 '28일'이라고 적은 직장인이 여럿 있었다. 하루키의 '1Q84', 정유정의 '7년의 밤' 등 전작을 읽겠다고 꼽은 독자도 적지 않았다. 회사원 이지수(30)씨는 올여름에 하루키와 정유정을 다 읽을 계획이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하루키는 냉철해서, 정유정은 감정을 후벼 파서 좋아요. '28'은 정유정에게 기대하지 못한 소재인데 한여름에 시원하게 읽힐 것 같아 기대됩니다. 하루키는 개인적으로 애증이 교차하는 작가인데 늘 그랬듯 그만의 감성 때문에 끌립니다."

    이 와중에 선택된 비소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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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에의 몰표 속에 순위에 오른 몇몇 비소설은 희소가치 때문에 거꾸로 눈길을 끈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청춘의 키워드 11가지를 담은 '김난도의 내일', 재레드 다이아몬드 미국 UCLA 교수의 '총, 균, 쇠', 광고로 인문학을 하는 박웅현의 에세이 '여덟 단어', 혜민 스님의 힐링 에세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소통의 기술을 일러주는 샘 혼의 자기계발서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등이 직장인의 낙점을 받은 비소설 1~5위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인문서는 '총, 균, 쇠'뿐이다. 1998년 퓰리처상을 차지한 이 묵직한 책(751쪽)은 인류 문명이 대륙별·민족별로 불평등해진 원인을 생물학적 차이가 아닌 환경적 차이 때문으로 해석한다. 2000년 이후 서울대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된 책이기도 하다.

    휴가철 독서 패턴

    '여름 휴가철에 읽기 좋은 분야는?'이라는 문항에 대한 직장인의 선택은 '소설(691명·34%)' '인문(387명)' '자기계발(336명)' '에세이(170명)' '여행(159명)' 순이었다. 그들이 이 무렵 책을 고르는 기준은 뭘까. 1002명(49%)이 '주제(메시지)'라고 답했다. '목차나 내용'에 489명이, '저자'에 299명이 표를 던졌다. 베스트셀러 여부, 매체의 호평, 북디자인 등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수웅 문학담당기자의 100자평.
    독자는 휴가철에도 종이책을 선호했다. 1903명(95%)이 "종이책으로 읽겠다"고 했다. 스마트폰, 태블릿PC, 이북 전용 단말기 등으로 읽겠다는 응답은 합쳐도 5%밖에 안 됐다.

    여행 가방에 책을 챙겨 넣는 사람도 많다. 윤병수 K북스 인천공항 점장은 "대학생 여행객이 몰리는 6월 말부터 직장인 휴가가 끝나는 8월 중순까지가 하계 성수기"라면서 "인천공항에서는 여행서를 중심으로 소설과 인문서가 많이 팔리는 시즌"이라고 말했다.

    달력만 봐도 몸이 근질근질해지는 계절이다. '바캉스(vacance)'의 어원처럼 몸을 비울 준비는 되셨는지. 책은 1만5000원으로 떠날 수 있는 바캉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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