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한가운데 UFO가 나타났다?

입력 2013.07.10 03:05

[약자를 위한 건축] [3] 건축가 윤승현이 지은 조제리보건소

낮은 건물 높이에 'ㅅ'자 지붕
시골 풍경과 잘 어우러지지만 정문서 보면 세련된 현대 건축
건축문화대상 공공부문 수상… 낯설어하던 주민도 "괜찮네"

초고령(超高齡)화된 요즘 시골에서 보건소는 단순한 진료 공간이 아니다. 경북 영주시 문수면 조제리는 구멍가게 하나 없는 70~80대 노인 가구 20여호에 불과한 오지 마을이다. 이곳에 있는 '조제보건진료소'를 27년 동안 지켜온 김순애(49) 소장은 "마을 어르신들에게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해 드리는 역할을 보건소가 맡고 있다"고 했다. "거동이 불편한 분들 대신 읍내에서 물건을 사다 드려요. 장날 버스 시간 놓치시면 차 태워 드리죠, 자식에게 보낼 편지 대필(代筆)도 해 드리고요. 겨울에는 난방비 걱정에 불 때지 않는 독거노인들이 추운 집 대신 보건소에 모여 주무시기도 합니다. 마을 사랑방이죠."

보건소 설계 "세련·현대적이 화두"

영주시는 2010년 노후한 보건소를 대체할 새 건물을 짓기로 하면서 건축가 윤승현(49)씨에게 설계 검토를 부탁했다. 윤 소장은 영주시 '공공건축가'로 영주시청에 건축 조언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일부 수정으로는 개선의 여지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조제보건진료소는 마을 주민이 드나드는 정문 쪽에서 보면 검은 아연철판 지붕이 두드러지는 매우 현대적인 건물이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튀지 않고 마을과 자연에 스며든다. 이웃 집들과 비슷한 ㅅ자 모양의 박공지붕인데다 건물 높이를 낮췄기 때문이다(아래 사진).
조제보건진료소는 마을 주민이 드나드는 정문 쪽에서 보면 검은 아연철판 지붕이 두드러지는 매우 현대적인 건물이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튀지 않고 마을과 자연에 스며든다. 이웃 집들과 비슷한 ㅅ자 모양의 박공지붕인데다 건물 높이를 낮췄기 때문이다(아래 사진). /이덕훈 기자
윤 소장은 건물이 들어설 현장을 보기 위해 2011년 2월 조제리를 처음 찾았다. "하필 그땐 눈(雪)도 없던 때문인지 생각보다 더 황량하고 을씨년스럽더라고요. 오래되고 정체된 느낌이었어요." 윤 소장은 최대한 세련되고 현대적인 건물을 짓기로 했다. "이분들에게 TV에서만 보던 화려한 생활을 누릴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지붕 재료는 고급 주택을 지을 때 선호되는 아연철판(징크)을 사용했고, 바닥에는 비닐 장판이 아닌 온돌 마루를 깔았다. 천장에는 카페 등에서 흔히 사용되는 펜던트 조명을 달았다. 대신 시멘트·벽돌 등 나머지 건축자재는 최대한 저렴한 것들을 선택해 보건복지부가 정한 '평당 479만원'이란 보건소 건설 예산 지침에 맞췄다. 보건소 면적이 45평(약 149㎡)이니 2억원이 조금 넘는 적은 예산으로 지은 것이다.

사랑방 혹은 전원주택

윤 소장은 "진료로 끝나는 게 아니라 편안한 마음을 주는 환경이기를 바랐다"고 했다. 밝고 경쾌하면서도, 마을 사랑방 역할을 하는 보건소를 일반 주택처럼 설계했다. 대기실은 거실처럼 만들었다. 커다란 통유리창을 통해 마을 앞 논이 시원하게 내다보인다. 벽면 곳곳을 유리로 마감해 빛이 쏟아져 들어오도록 했다. 천장은 4.5m, 벽은 흰색으로 했다.

마을 입구에 있는 보건소는 멀리서 보면 인접한 다른 집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일반 시골집과 다름없는 'ㅅ'자형 박공지붕에다 건물 높이를 최대한 낮췄다. 덕분에 보건소 건물이 튀지 않고 마을과 풍경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하지만 마을 쪽에서 보면 검은 아연철판 지붕이 한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듯 보이는 매우 현대적인 건물이다. 평소와 다른 낯설고 현대적 모습을 통해 마을 주민에게 새로운 시각적 자극을 제공하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설계이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넓고 밝아 좋다"

새 보건소에 대해 마을 주민은 대체로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지내다 보니 안락하다"는 반응이다. 보건소에 새로 들어온 체지방분석기로 건강 진단을 받으러 온 김남순(85)씨는 "(바로 옆에 있는 옛 보건소보다) 더 넓고 밝아 좋다"고 했다. 마을에서 '새댁'으로 불리는 박은숙(47)씨는 "지붕이 반듯해야 하는데 기울어져서 넘어갈 것 같았는데, 자꾸 보니 괜찮더라"면서 "카페 같다"고 말했다. 윤 소장은 "마을 주민이 '카페 같다'는 반응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조제보건진료소는 2012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사회공공 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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