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停戰 60주년 기획] 서해섬 용사들, NLL 아래로 내려오라 하자 "피로 지킨 곳을…" 통곡

조선일보
  • 전현석 기자
    입력 2013.07.04 03:00 | 수정 2013.07.05 09:50

    [6·25때 서해섬을 거점으로 유격戰 펼쳤던 '8240부대' 부부대장 故 최희화씨 스토리]

    황해도서 태어나 反共투사로… 중공군 개입후 섬에 전투 기지, 가족들도 데려와 함께 살아
    공식 군번 없는 군인으로 北 내륙 코앞에서 적진 교란… 낙하산 타고 北으로 침투도

    국방부 산하 군사편찬연구소는 최근 미국 측으로부터 6·25전쟁 당시 극동군사령부 산하 유격부대인 8240부대 관련 작전명령서를 입수했다. 이 중 '최희화를 부산에 보내니 교통편을 제공하라'는 내용의 문서가 나왔다. 군번이 없고 북한 말투를 쓰는 유격대원을 아군이 의심할까 봐 일종의 '통행 증서'를 발급한 사실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최희화씨의 아들 최일도 목사는 "전사(戰史)에 기록이 없어 아버지 친구 분들로부터 말로만 듣던 아버지 참전 사실을 이렇게 확인하게 되다니 꿈만 같다"고 했다.

    停戰 두 달 앞두고 오작도에서… 최일도 목사의 아버지 최희화씨가 정전 2개월을 앞두고 북한 황해도 근처 오작도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당시 미군 측이 컬러 사진을 찍어 최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사진은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인‘우리민족끼리’가 트위터 계정에 공개한 오작도 모습
    停戰 두 달 앞두고 오작도에서… 최일도 목사의 아버지 최희화씨가 정전 2개월을 앞두고 북한 황해도 근처 오작도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당시 미군 측이 컬러 사진을 찍어 최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사진은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인‘우리민족끼리’가 트위터 계정에 공개한 오작도 모습. /최일도 목사 제공·우리민족끼리 트위터 사진

    최희화씨는 1922년 2월 5일 황해도 장연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최씨는 일곱 살 어린 현순옥씨와 1948년 5월 5일 결혼했다. 현씨는 황해도 송화군 대지주의 딸이었다고 한다. 84세인 현씨는 본지 인터뷰에서 "북한군이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오빠들을 죽창으로 찔러 죽이거나 탄광으로 보내 모두 행방불명이 됐다"고 말했다.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6·25전쟁이 터진 1950년 10월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평양까지 진격하자 최씨 등 장연 지역 반공 청년들은 자체 치안대를 조직해 북한군 토벌 작전을 펼쳤다고 한다.

    1951년 1월 중공군이 개입해 유엔군이 서울 이남까지 후퇴하자 장연 치안대는 백령도로 철수했고, 그해 3월 8240부대 소속 동키 4부대(일명 백호부대)가 됐다. 최씨는 이 부대의 부부대장이 됐다. 동키부대원들은 대부분 북한 출신으로 섬에 가족들을 데려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동키 4부대는 황해도 지역 섬인 월내도·육도·마합도·초도 등에 기지를 두고 활동했다. 내륙에서 1.4㎞ 떨어진 육도를 전초기지 삼아 유격전을 펼쳤다. 1952년 1~11월 적 1832명을 살상하는 전과를 올렸다. 1951년 9월 월내도 서남쪽 해상에 추락한 영국 전투기의 조종사를 구출하기도 했다.

    video_0
    北에 4번이상 침투한 대원에 '휘장'… 8240부대원 수백명이 도열해 있는 가운데 일부 부대원들이 단상 앞에서 가슴에 휘장을 달고 꽃다발을 들고 서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관계자는“8240부대는 적진에 침투해 유격전과 첩보작전을 수행했다”며“워낙 전사자와 실종자가 많다 보니 네 번 이상 침투해 생존한 대원에게 미군 측에서 휘장을 달아줬다”고 말했다. 이 사진은 1952년 3월 월내도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최일도 목사 제공
    6.25 당시 백령도 등 서해5도를 지키기 위해 활약한 켈리부대의 모습을 담은 희귀 사진 자료가 발견됐다. 다일공동체 최일도 목사 소장 자료. /이덕훈 기자

    최씨는 서해 지역뿐만 아니라 낙하산을 타고 적진에 침투한 적도 많았다고 한다. 최 목사가 어릴 때 국군의 날 행사에서 군인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을 TV로 보고 "우와" 했더니 최씨는 "나는 저런 거 북한 하늘에서 스무 번은 넘게 했다"며 웃었다고 한다.

    부인 현씨는 "남편에게 들은 무용담 중 딱 하나만 기억난다"고 했다. "전투 중 인해전술로 나오는 중공(중국)군을 당할 수 없어 한 번은 죽은 척 누워 있었대요. 그랬더니 중공군이 시체들을 밟으며 살았나 죽었나 확인하더래. 자기도 많이 밟혔는데 감쪽같이 속이고 살아남았다는 거야."

    전사에 따르면 동키 4부대는 휴전을 한 달여 앞두고 유엔군 지시에 따라 월내도, 육도 등에서 대청도로 철수했다. 최씨는 "8240부대원들은 당시 전우들의 피로 사수한 섬들을 이렇게 그냥 내줄 수 없다며 통곡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씨는 "전쟁이 끝나면 민간인 신분으로 되돌아가겠다"는 자신의 약속대로 정전 이후 8240부대에서 나왔다. 최 목사가 중학교 3학년 때인 1971년 7월 10일 최씨는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최씨는 가족에게 "맥아더 사령관에게 상으로 받았다"는 권총 한자루를 남겼다. 부인 현씨는 "남편 사망 직후 불법 무기류를 자진 신고해야 한다고 하길래 권총을 명동파출소에 맡겼다"고 했다. 최 목사는 "아버지 권총을 꼭 되찾아 영전에 바치고 싶다"고 했다.

    ☞8240부대

    6·25전쟁 당시인 1951년 1월 창설돼 서해 도서 지역과 황해도 내륙, 동해 등지에서 게릴라전을 펼쳤던 유격부대다. 1948년 만들어진 대북 첩보부대인 켈로부대도 1951년 11월 이 부대로 흡수됐다. 미 극동군사령부 지휘를 받았으며, 부대 특성상 공식 계급과 군번이 없는 부대였다. 부대 인원이 최대 3만명에 이르기도 했다. 부대원 20%는 여성으로 북한에 침투해 첩보전을 벌였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