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5월(停戰협정 직전) 오작도 점령했던 우리軍, NLL(북방한계선) 긋기 직전 '눈물의 철군'

입력 2013.07.04 03:00

[본지, 최일도 목사 사진 입수]

우리 軍이 현재의 NLL 위쪽 서해섬 지킨 모습 첫 공개
유엔司, 北에 일부 섬 양보한 NLL 긋자 우리측 물러나

해군력 궤멸됐던 北, NLL 덕분에 유엔군 '해상봉쇄'서 벗어나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한 달 뒤에 설정된 서해 북방한계선(NLL)이 한국군과 유엔군이 점령하고 있던 일부 섬들을 북측에 양보한 것임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공개됐다.

본지(本紙)는 3일 북한 황해도 해안에서 불과 1.5㎞ 떨어진 오작도 등지에서 공산군과 유격전을 벌였던 특수부대인 8240부대원들이 정전협정 체결 직전인 1953년 5월 활동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 24장을 최일도 목사로부터 단독 입수했다. 오작도는 현재 NLL 북쪽 해상에 있어 북한 영토로 돼 있으며, 지난 3월 김정은이 방문해 "명령만 내리면 적들을 모조리 불도가니에 쓸어 넣으라"고 지시했던 백령도 인근 월내도와 가깝다. 최 목사는 백령도 등 서해상 섬에서 유격전을 벌였던 8240부대 동키4부대 부부대장 출신이었던 아버지 최희화씨가 작고한 뒤 사진들을 보관해오다 정전협정 60주년을 앞두고 이날 공개했다.

38도선 이북 섬들도 유엔군이 점령

이날 공개된 사진들은 NLL이 오히려 북한을 배려해 설정됐음을 보여주는 정황 증거의 하나로 평가된다.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당시 제공권(制空權)은 물론 제해권(制海權)도 유엔군이 장악하고 있었고, 서해상 섬들도 대부분 한국군 해병대와 유격부대 등 유엔군이 점령하고 있었다. 6·25전쟁 발발 이전 우리나라가 관할하고 있던 백령도·연평도 등 38도선 이남의 섬들은 물론, 북한이 관할했던 석도, 용도, 초도 등 38선 이북의 섬들도 유엔군이 관할하고 있었다.

미 극동군사령부 산하 특수 유격부대인 8240부대원들이 오작도(烏鵲島)를 사수하기 위해 참호를 파고 기관총 등으로 중무장한 채 경계를 서고 있다.
미 극동군사령부 산하 특수 유격부대인 8240부대원들이 오작도(烏鵲島)를 사수하기 위해 참호를 파고 기관총 등으로 중무장한 채 경계를 서고 있다.‘ (단기)4286.5.27.’이라는 표시는 1953년 7월 정전협정 두 달 전에 찍은 사진이라는 것을 뜻한다. 오작도는 북한 본토에서 1.5㎞ 떨어진 섬이다. 사진 뒤쪽에 북한 황해도 해안이 보인다. /최일도 목사 제공
정전협정 발효 시 육지의 경우 유엔군과 공산군 점령지역을 기준으로 DMZ(비무장지대) 경계선이 설정됐던 원칙을 바다에도 적용하면 오작도 등도 우리 영토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 대장은 53년 8월 30일 남북 간의 우발적 무력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NLL을 설정하면서 백령도 등 서북 5개 도서와 북한지역의 중간선으로 결정했다. 당시 국제적으로 통용되던 폭 3해리 영해 원칙에 따라 서북 도서와 북한 지역의 대략적인 중간선을 기준으로 하고, 한강 하구로부터 백령도 서북쪽까지 12개 좌표를 연결해 설정한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당시 클라크 사령관은 유엔군이 점령했던 섬들을 모두 고수할 경우 북한지역 항구들이 봉쇄될 수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해 유엔군이 관할했던 일부 섬들을 북측에 양보했던 것이고 오작도도 그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당시 해군력이 궤멸돼 거의 전무(全無)한 상태에 있었던 북한으로선 NLL이 울타리가 돼 유엔군 측의 해상봉쇄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8240부대는 정전협정에 즈음해 유엔군 지시에 따라 현재의 서해 5도를 제외한 나머지 섬에서 모두 철수했다. 북한은 NLL 설정에 따라 NLL 이북의 섬들과 해역을 얻을 수 있었다. 이 해역에서 해군 함정과 민간 선박의 자유로운 항해 및 어로활동을 보장받게 됐던 것도 북한이 얻은 실리로 꼽힌다.

북, 20년 동안 NLL 이의제기 안 해

북한은 NLL이 설정된 뒤 20년 동안 아무런 이의제기도 하지 않다가 1973년부터 NLL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1959년 북한 조선통신사가 공식 발간한 ‘조선중앙연감’은 NLL을 군사분계선으로 표기해 이를 인정하기까지 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지난 3월 11일 서해 월내도 방어대를 시찰한 뒤 목선을 타고 떠나는 모습.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지난 3월 11일 서해 월내도 방어대를 시찰한 뒤 목선을 타고 떠나는 모습. 월내도는 8240부대가 정전협정 전까지 전초기지로 삼았던 섬이다. /조선중앙통신
1963년 5월 개최된 군사정전위 회담에서 북한 간첩선의 침투 및 격퇴 위치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을 때 북한 측은 “북한 함정이 북방한계선을 넘어간 적이 없다”고 언급해 NLL을 사실상 인정했다. 1984년 여름 발생한 우리의 홍수 피해에 대해 북측이 수해 복구 물자를 지원해줄 때도 양측 호송단이 백령도 및 연평도 인근 NLL 선상에서 상봉해 수송 선박을 각각 인계·인수, NLL을 실질적인 해상경계선으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1992년 체결·발효된 남북 기본합의서 불가침 부속합의서에서도 ‘남과 북의 해상 불가침 구역은 해상 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관할해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해 NLL이 해상 불가침 경계선임을 확인한 적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1973년 10월부터 11월까지 43차례에 걸쳐 NLL을 의도적으로 침범하는 ‘서해사태’를 일으킨 뒤 NLL 무력화 공세를 계속해 오고 있다. 남북 군사실무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문성묵 전 국방부 군비통제 차장은 “NLL은 우리와 유엔군이 북한에 양보한 것이고 당시 북한으로선 고마웠던 해상 경계선이라는 것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는 데 오작도 사진 공개의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