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리 난리인가 봤더니… 익숙한 그 '하루키'였다

    입력 : 2013.07.02 03:02

    [하루키 신작 '색채가…' 읽어보니]

    느닷없이 절교당한 청년 쓰쿠루, 그 이유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
    단순하지만 여전히 강한 호소력, 순수에 대한 탐색·갈망 담겨… 전작 비슷한 동어 반복 아쉬워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64·사진)의 신작 장편이 드디어 1일 번역·출간됐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양억관 옮김·민음사). 이제 무분별한 추종이나 폄하를 넘어 텍스트를 가지고 얘기할 수 있게 된 시간이다. 기자도 이날 출간된 20만권 중의 한 권을 읽기 시작했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도쿄의 대학 2학년생 다자키 쓰쿠루는 고향 나고야로 돌아갔다가 친구 4명에게 느닷없는 절교를 당한다. "도대체 왜?"라고 물었을 때 친구들은 "너 스스로에게 물어봐"라고 되묻는다. 소심한 쓰쿠루는 죽음과 소멸이라는 화두에만 몰두한다.

    16년이 흐른다. 처음으로 여자 친구를 만들고 싶은데도 그때 상처가 문제다. 그녀, 사라는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나볼 것을 제안한다. 두 명의 남자, 두 명의 여자. 자신의 이름(多崎作)과 달리 친구들의 한자 이름에는 색채가 들어 있었다. 쓰쿠루만 빼고 서로를 미스터 레드, 미스터 블루, 미스 화이트, 미스 블랙이라 부른 이유였다. 쓰쿠루는 그 4명을 찾아 순례를 시작한다.

    "하루키는 여러 편의 소설을 썼지만 실은 단 하나의 소설을 썼고, 그 단 하나의 소설을 끝없이 개작해 오고 있을 따름"(문학평론가 남진우)이라는 지적이 있다. 435쪽에 이르는 독서를 마친 소감은 하루키는 자신이 구축한 '하루키 월드'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날 생각이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이는 동어 반복을 거듭하는 작가에 대한 아쉬움이며 동시에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더 예민하게 소년과 청년의 감수성을 유지하는 작가에 대한 경탄이기도 하다.

    '노르웨이의 숲'에서 전작 '1Q 84'에 이르기까지 하루키 서사의 기본 구조는 탐색담이다. 모던한 감성으로 무장한 남자 주인공은 어느 날 문득 구체적 이유나 설명 없이 사라진 연인이나 아내를 찾아나선다. 끊임없이 장애물을 돌파하며 문명의 커튼 뒤에 숨어 있는 성(聖)스러운 세계, 시원(始原)의 세계를 찾아나서는 것이다.

    1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는 하루키의 신작을 사려는 독자들이 긴 줄을 섰다.
    1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는 하루키의 신작을 사려는 독자들이 긴 줄을 섰다. 출판사의‘줄세우기 마케팅’에 대해 지나친 호들갑이란 비판과 재미있는 이벤트라는 평가가 엇갈렸다. /김연정 객원기자
    '색채가 없는…'에서 사라진 것은 고등학교 시절 우정이었다.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당해야 했던 절교. 16년 뒤 순례에서 쓰쿠루는 처음 그 이유를 듣는다. 눈 밝은 독자라면 예측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 그렇다 하더라도 그 내용은 충분히 충격적이다. 미스터리 장르의 현란한 활용으로 하루키는 예의 그 시원 탐색을 반복한다. 더 이상 순수할 수 없었던 세계에 대한 염원과 갈망이다.

    핀란드에서 힘들게 만난 '미스 블랙'은 '그렇게 멋진 시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386쪽)을 슬퍼한다. 쓰쿠루가 동경으로 돌아와 준비한 대답은 이것이었다.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에 휩쓸려 사라져 버리지는 않았어. 우리는 그때 뭔가를 강하게 믿었고, 뭔가를 강하게 믿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을 가졌어. 그런 마음이 그냥 어딘가로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지는 않아.'(437쪽)

    순수의 시절을 호출하는 쓰쿠루의 독백은 단순하지만 여전히 강력한 호소력과 설득력을 지녔다. 속도와 물량이 지배하는 후기 자본주의 세상에서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대상. 하루키 서사에 대한 원초적 단조로움에 대한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면서도 하루키 월드가 여전히 호응을 얻고 있는 대표적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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