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아 트롬본을 연주하는 높이 13m짜리 '로봇 태권V'가 올 광복절을 맞아 독도에 출동한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에 굳건히 서 있는 '정의의 화신'. 만화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 애국적 서사시는 조각가 김택기(42)가 구상했다.
"로봇 태권V 형상을 처음 만들었던 3년 전부터 독도에 작품을 세우는 걸 상상했다. '정의의 아이콘'이 영토를 수호한다니, 상상만 해도 짜릿하지 않은가."
'로봇 태권V'는 1976년 제작된 국산 애니메이션. 당시 일본산 로봇 애니메이션 '마징가 Z'에 대항하는 '토종 로봇'으로 인기를 끌었다.
김택기의 '로봇 태권V'는 악당을 쳐부수는 게 아니라 피아노를 치고, 색소폰을 부는 '음악가 로봇'이다. 스테인리스 스틸 철사를 용접해 만들어 선(線)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킨 '가벼운 작품'이다.
이번 독도 프로젝트 작품도 노란 트롬본을 연주하는 형상이다. "꼭 총칼을 들어야만 정의를 수호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독도라는 '정치적 공간'에 작품이 설치되니만큼 일본과 맞서 싸우기보다는 우리의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지요."'태권V'의 트롬본은 '나팔'의 상징. '나팔'에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작가는 '평화를 알리는 천사들의 상징물'에 초점을 맞췄다.
김택기는 동아대 조소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로 유학, 스트라스부르 고등장식미술대학원과 소르본 파리Ⅰ대학에서 공부했다. 철과 튜브를 이용한 공룡 작품 등 철 조각을 주로 했다. '태권V' 작업은 대학교 때부터 구상했다. 강원도 산골에서 자란 그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처음 '태권V'를 봤다. "충주 큰집에 놀러 갔다가 태권V를 처음 보고선 무척 신기했어요. '어, 얘는 태권도도 하는구나' 했죠." 그 후론 용돈만 생기면 '태권V' 프라모델을 사들여 조립에 몰두했다. 조각가가 된 그가 '거대한 프라모델' 대상으로 태권V를 점찍은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서울 CSP111 아트스페이스, 경기도 장흥 아트파크, 홍콩 타임스퀘어 등에서 '로봇 태권V'를 선보였다. '독도 프로젝트'를 위해 제작한 그의 '로봇 태권V'는 8월 15일 저녁 독도 동도(東島) 선착장에 세워진 후 다음 날 아침 울릉도 안용복기념관으로 옮겨져 영구 설치될 예정이다. 좌대와 몸체를 분리해 바지선에 싣고 가 현장에서 크레인으로 조립 설치한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있을 출정식, 작품 제작 및 설치 과정이 다큐멘터리로 기록된다. 7월 말 완성될 작품 제작비는 5억~6억원. 미스터피자 등이 후원하고, 크라우드 펀딩을 이용해 모금 운동도 하고 있다.
독도는 천연기념물… 작품 설치엔 허가 필수
독도에 아무나 작품을 설치할 수 있을까. 독도는 1982년 천연기념물 제336호로 지정된 보호구역. 표지판 하나를 세울 때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할 정도로 까다롭다. 동도와 서도 두 섬 중 동도 선착장에 한해서만 문화행사를 허가한다. 이번 '로봇 태권V' 프로젝트는 울릉군 독도관리사무소의 허가를 받아 이루어진다. 울릉군은 '안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승인받은 자가 모든 책임을 지고, 확성기 등을 사용해 과도한 소음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입도(入島)를 허락했다. 김택기씨는 "이번 건은 영구 설치도 아니고 일시적 행사라 문화재위원회 허가까지 필요 없다고 들었다. 땅을 훼손하면 안 된다고 해서 로봇을 세우는 좌대도 가지고 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