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25·세계 랭킹 1위)와 최나연(26·세계 4위)은 현재 여자 골프 세계 랭킹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있는 한국 선수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두 사람은 평소 "서로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되는 사이"라고 말할 만큼 가깝다. 2주 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가 없는 기간에 박인비는 최나연의 미국 올랜도 집에서 일주일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김치찌개와 갈비를 직접 요리해 먹고 테니스와 볼링을 치면서 꿀맛 같은 휴식을 즐겼다고 한다.

그러나 골프장에 들어서면 둘은 뜨거운 경쟁을 펼친다. 박인비는 "내가 오랜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상금왕을 차지하는 나연이에게 정말 질투가 났다"고 했다. 최나연은 "인비가 우승하면 나는 더 열심히 훈련한다"며 "요즘 인비가 무척 행복해 보여 질투가 난다. 나도 인비처럼 약혼자를 구해야 할까"라고 했다.

세계 랭킹 1위 박인비(왼쪽)와 4위 최나연은 골프장 밖에서는 절친한 친구 사이이지만 코스 안에선 최고의 라이벌이다. 27일 개막하는 US여자오픈에서 우승 경쟁에 나선다. 사진은 2010년 LPGA 투어 제이미 파 오웬스 코닝 클래식에서 동반 라운드를 하는 모습.

오랜 친구이자 라이벌인 박인비와 최나연이 시즌 세 번째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총상금 325만달러)에서 물러설 수 없는 우승 경쟁을 벌인다. 올해로 68회째를 맞는 이번 대회는 27일부터 나흘간 미국 뉴욕주 사우샘프턴의 세보낵 골프장(파72·6821야드)에서 열린다. 올 시즌 2개 메이저 대회를 포함해 5승을 올린 박인비에겐 '시즌 그랜드슬램' 달성을 위해 트로피가 꼭 필요하다. 박세리(36)의 '맨발 투혼'으로 유명한 블랙울프런 골프장에서 지난해 뜻깊은 우승을 차지한 디펜딩 챔피언 최나연은 타이틀 방어에 나선다.

메이저 대회인 크라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4월),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6월)을 제패한 박인비가 이번 대회에서도 우승한다면 LPGA 투어의 여러 기록을 새로 쓰게 된다. 한 시즌에 3개 메이저에서 우승한 선수는 투어에 3명 있었다. 이 중 시즌 첫 3개 메이저 연속 우승은 베이브 자하리아스(미국·1950년)가 유일하다.

박인비는 이 대회에 앞서 열린 웨그먼스 대회와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에서 연달아 우승했다. 투어 최다 연승 기록(5연승)은 낸시 로페즈(미국)와 애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 갖고 있다.

박세리가 세운 한국 선수의 LPGA 투어 시즌 최다승 기록(5승)과 시즌 메이저 최다승 기록(2승)도 넘어설 수 있게 된다. 한국 선수의 LPGA 투어 통산 승수에서도 현재 김미현(36)과 공동 3위(8승)인 박인비가 1승을 추가하면 박세리(25승), 신지애(11승)에 이어 단독 3위로 올라선다. 아시아 선수의 10연속 메이저 우승, 한국 선수의 5연속 메이저 우승 행진을 이어갈지도 관심사다.

박인비의 도전을 막아설 강력한 우승 후보는 투어 통산 7승을 거둔 친구 최나연이다. 지난해 2승을 달성한 최나연은 세계 랭킹 2위까지 올라 1위 청야니(대만)를 바짝 따라잡았다. 세계 1위가 손에 잡힐 듯했지만 박인비가 먼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올해 우승이 없는 최나연은 현재 박인비, 스테이시 루이스(미국),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에 이어 세계 4위다.

최나연은 "나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줬던 것 같다"며 "이번 주에는 당당하게 걷고 자신감 있게 경기하면서 챔피언답게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최나연은 "인비와 일주일간 함께 지내면서 어떤 방법으로 연습하는지, 어떤 감정을 갖고 생활하는지 알아내려 애썼다"며 "인비는 연습도 많이 하지 않더라.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것이 비결인 듯하다"고 했다.

이번 대회가 열리는 세보낵 골프장은 2006년 문을 열었다. 연습 라운드를 돌아본 선수들은 "좁은 페어웨이, 무성한 러프 같은 전형적인 US여자오픈 코스와는 스타일이 다른데도 무척 까다롭다"고 입을 모았다. 전장(全長)이 길고 페어웨이 폭이 넓어 장타자에게 유리한 코스라는 평가다.

그러나 그린의 경사가 가파르고 굴곡이 매우 심해 정교한 공략이 필요하다. 박인비는 "그린을 아주 잘 파악한 뒤 세컨드 샷을 정확한 지점에 떨어뜨려야 한다"고 했다.

전반 9홀엔 파5홀이 8번홀(500야드) 한 개이지만 후반에는 13번홀(549야드), 15번홀(574야드), 18번홀(523야드) 등 3개나 된다. 크리스티 커(미국)는 "바람이 도와주면 18번홀에서 투온이 가능하다"며 "흥미진진한 역전 드라마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