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의 한국 음식 예찬이 부쩍 늘었다. 오랫동안 외국인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대표 메뉴는 불고기와 김치였다. 뒤이어 삼계탕, 비빔밥, 순두부로 조금 범위가 넓어졌다. 요즘엔 전문화·세분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외국의 일류 요리사들이 한국에 와 "한국 장아찌에 푹 빠졌어요" "한국 젓갈 맛에 반했어요" 하는 식이다. 여기에 '발효·보존 식품의 최고봉'이란 설명이 곁들여진다.

▶국제 경험이 많은 미식가 피터 현(玄)씨는 "한국 음식이 차려진 식탁을 보면 출퇴근길 한남대교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어에는 맛을 표현하는 형용사가 유난히 많다. 달다, 짜다, 쓰다, 시다, 맵다 같은 맛의 기본을 나타내는 어휘 말고도 새콤하다, 시큼털털하다같이 여러 뉘앙스를 표현하는 말이 수백 가지는 될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맛을 밥상 위에서 구현(具現)하려면 얼마나 많은 음식이 필요할 것인가.

▶문제는 우리에게 익숙한 맛을 몇몇 외국인이 좋아하게 됐다고 한국 음식이 세계화됐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영어에는 '짜다'에 해당하는 형용사가 따로 없어 'salty(소금 맛)'라고 표현한다. '맵다'도 표현할 말이 없어 '뜨겁다(hot)'를 빌려 쓴다. '한식의 세계화'란 한국 음식이 이런 영어권 사람들을 포함해 우리와 문화가 다른 세계인에게 맛있다, 먹을 만하다고 받아들여지게 되는 걸 가리킨다.

▶일본은 1964년 도쿄 올림픽 때부터 꾸준히 노력해 스시, 사시미, 데리야키를 세계화했다. 일본인들은 우리의 청국장 비슷한 나토를 좋아하지만 이를 굳이 세계적 음식으로 만들려 하지 않았다. 외국인들이 나토의 냄새와 끈적끈적한 느낌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 대신 그들은 현지인 입맛에 맞추기 위해 스시를 변형해 캘리포니아 롤을 내놓았다.

▶재작년 농림수산식품부가 미국 영화배우 브룩 실즈가 뉴욕 한국 상점에서 고추장과 당면을 고르는 사진을 국내에 소개하며 "브룩 실즈는 비빔밥을 맛본 후 한식이 좋아 직접 만들기도 했고 특히 고추장 맛을 좋아한다"고 홍보한 일이 있다. 많은 사람이 멋모르고 "미국 미인도 한식에 빠졌나" 하며 우쭐했다. 그러나 미국 한 잡지에 실렸다는 이 사진은 한식 세계화의 성과를 홍보하려고 연출한 것이고 브룩 실즈는 한식을 좋아한다는 말을 한 적도 없다는 사실이 엊그제 감사원 조사 결과 밝혀졌다. 한식 세계화를 무슨 수출 실적 달성하듯 밀어붙이다 보니 없는 일도 만들고 엉뚱한 데 돈을 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