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 아동들 지켜준 우산 같은 분… 하늘선 수호천사 되셨을 것"

입력 2013.06.22 03:13

[48년간 어린이재단서 헌신… 故김석산 회장 3주기 추도식]

고아원서 자란 구호단체 首長, 도움의 손길 중요성 잘 알아
암 투병 중에도 전국 누비며 불우아동 후원금 마련에 앞장
"故 김 회장의 삶 자체가 어려운 아이들 도와야 할 이유"
3주기 맞아 묘소에 작은 공적비

20일 충남 세종시 장군면 금암리 대전공원묘원 고(故) 김석산 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 묘소 앞에 어른 무릎 높이의 작은 공적비가 세워졌다. 공적비엔 '48년간 불우 어린이들의 친구가 되고, 그들을 따뜻하게 보살펴주신 진정한 사회복지사'라고 적혔다.

김 회장 3주기를 맞아 가족, 후배 등 40여명이 잊지 않고 그의 묘를 찾아 공적비를 세웠다. 사람들은 "자신은 전혀 돌보지 않았던 김 회장의 삶처럼 이 작은 공적비를 세우는 데에도 3년이나 걸렸다"고 했다. 김 회장 지인이 추모사를 낭독했다. "김석산 회장은 지금쯤 천국에서 어린 친구들의 수호천사가 되셨을 겁니다. 여러분, 제2, 제3의 김석산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지난 2007년 6월 ‘소외된 아이들의 아버지’ 김석산 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회장이 에티오피아를 방문해 현지 어린이들을 돌보고 있다
지난 2007년 6월 ‘소외된 아이들의 아버지’ 김석산 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회장이 에티오피아를 방문해 현지 어린이들을 돌보고 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제공
김 회장은 '고아원 소년'이었다. 그는 고아원에서 자라 자신과 같은 가난한 아이 수십만명을 돕는 '소외된 아이들의 아버지'가 됐다. 세계 58개국이 가입한 국제어린이재단연맹은 그를 기려 '김석산 기념 장학금(Dr. Kim memorial scholarship)'을 만들기도 했다.

김 회장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걸인 수용소를 전전하다 보육원(대전 천양원)에 정착해 미 기독교아동복리회가 후원해 준 돈으로 먹고, 입고, 배웠다. 1963년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기독교아동복리회 한국 지부(어린이재단의 전신)를 찾아 외국인 후원자가 보낸 편지를 번역하는 일을 하며 지부를 도왔다. 그러던 청년은 32년이 지난 1995년 구호 단체의 수장이 됐다.

그는 아이들을 도우러 가면 아이가 더럽든, 병에 걸렸든 무조건 안고 볼을 비볐다. 가난한 아이들일수록 외로울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46년간 국내외 아동 160만여명에게 4150여억원을 지원했다. 해마다 에티오피아, 우간다 등 최빈국 아이들을 찾았고, 평양에도 빵 공장을 짓고 재료를 지원해 가난한 아이들이 빵을 먹을 수 있도록 했다. 현재 기부에 널리 쓰이는 '결연 후원' 방식도 그가 처음 국내에 도입한 것이다. 해외 아동을 만나기 위해 1년에 비행기를 수십 번씩 탔고, 투병 중에도 후원금을 모으려고 전국을 누볐다. 김진(41) 어린이재단 국제협력실장은 "항암 치료가 끝날 무렵 재단에 나와 '나 이제 다 나았으니까 애들 도우러 가야지'라고 하셨는데 2주 만에 돌아가셨다"며 "평생 애들 생각만 하시고 '우리 회장님, 참 바보같이 사셨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친자식이 없었던 그는 "세상에서 제일 자식이 많은 사람"이라 했다. 부인 이종숙(66)씨는 "우리 모두 아이를 참 좋아했지만, 아이가 안 생겼다"며 "우리에겐 친자식 대신 마음으로 품은 자식이 수없이 많으니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는 성공한 사회사업가였다. 그러나 경제적 성공을 탐하지 않았다. 국내에서 제일 큰 복지 재단의 회장이었던 그는 작은 집 한 채를 남기고 떠났다. 투병 중엔 병원비가 없어 직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사람도 많았다. 1998년부터 재단 홍보대사를 맡아온 코미디언 이홍렬(59)씨는 "처음엔 '회장님'이니까 그냥 데면데면 대했는데, 사심 없이 불쌍한 애들 돕는 모습에 감동해 팬이 됐다"면서 "회장님이 어렸을 때 후원을 받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그분의 삶이 바로 우리가 남을 도와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생전에 자신의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저는 후원금으로 배울 기회를 얻었고, 후원자들이 보내준 글에서 사랑을 받았습니다. 나를 낳아 준 부모님도 있지만, 나를 키워 준 후원자들도 내 부모님입니다. 제가 평생 사회복지의 외길을 걸은 것은 제 운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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