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말'은 사족(蛇足)으로 비칠 때가 꽤 있다. 불완전한 번역에 대한 자책, 푸념으로도 들린다. 그런데 번역가 김남주는 옮긴이의 말을 그러모아 에세이 '나의 프랑스식 서재'(이봄)를 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아멜리 노통브의 '오후 네시',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자신이 번역한 소설 37편에 대한 후기, 그를 흔든 문장도 담겨 있다. '사족의 덩어리'가 아니라서 반가웠는데 하필 김남주는 프랑스 남부 아를의 번역자회관(CITL)에 머물고 있었다. 이메일로 질문지를 보냈다. "바가 문 열기 기다렸다가 에스프레소 큰 잔을 마시며 썼다"면서 그가 답을 붙여왔다.
―서문에 폴 발레리의 무덤이 나온다.
"무덤가에 가면 서늘한 바람이 분다. 내가 지금 좇고 있는 대부분의 것이 헛되다는 것, 이승의 덧없음과 중요함을 깨우쳐준다. 그 지점 어딘가에서 문학이 시작된다."
―'저울 한쪽에 원문을, 다른 한쪽에 옮겨놓은 말을 올려놓고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는 것' '부정한 미녀(의역)냐 충실한 추녀(직역)냐' 등 번역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도 던지고 있다. 그 '말의 봇짐'을 지고 첫 책을 낸 감회는?
"유럽의 문학 번역에서는 해석의 여지에 훨씬 후한 점수를 준다. 같은 책을 여러 차례 번역하는 게 자기 언어를 풍부하게 한다는 믿음도 있다. 하지만 번역이 보상받지 못하는 직업이라는 점은 동·서양이 같다. 이 책의 교정본을 보내놓고 그 아릿하고 벅찬 기쁨의 정체가 잘 파악되지 않아 한동안 먹먹하게 앉아 있었다."
―번역에 대한 김남주만의 정의라면?
"문학 번역은 번역자라는 '불완전하지만 매력적인 깔때기'를 거쳐야 한다. 번역은 정서의 무게를 다는 것과 같다. 즉 번역본을 읽은 사람이 원본을 읽은 사람과 같은 감정을 갖게 하는 것이다."
―책에 담은 소설 37편 중 번역자 김남주의 취향은?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글쓰기는 얼핏 쉬워 보이지만 찬찬한 읽기를 요구하는데 참 매력적으로 보답한다. 행간이 요란스럽지 않게 함축적인 그의 문장은 내가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자부심을 준다. 힐링 서적 수십 쪽의 함량을 단 한 단락에 담고 있는, 선물 같은 글이다."
―가장 괴롭힌 작가라면?
"로맹 가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서 단편마다 완전히 다른 문체를 써 내 기를 제압했고 '가면의 생'에선 분열적인 말장난을 거듭했고 '솔로몬 왕의 고뇌'에서는 문장마다 죽음의 기운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