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신작 애니메이션 ‘쾌걸 조로리의 대대대대모험’이 개봉했다. 케이블 어린이 채널 ‘투니버스’에서 2006년부터 지난해 4월까지 ‘쾌걸 조로리’라는 제목으로 3기에 걸쳐 방영했던 인기 작품으로, 이번에 극장용으로 재탄생했다.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을 놓고 성우(聲優)와 관객들이 뿔이 났다.

문제는 목소리 주연이 6년간 TV에서 목소리 주연을 맡았던 성우 김정은(40)씨에서 더빙 경력이 일천한 개그맨 정태호(35)씨로 바뀌었고, 성우 김씨는 조로리의 아빠 역을 맡게 됐기 때문이다.

올해 개봉한 애니메이션들. 성우 대신 개그맨들이 주연 성우를 맡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배급사 얼리버드픽처스는 "애니메이션에는 스타가 출연하지 않으니까 언론 노출이 어렵고, 연예인 티켓 파워가 없으면 극장에 걸리지도 못한다"고 해명했지만 이 작품에 추억이 깃든 관객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영화 평점 게시판과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엔 "청각 고문이다" "'발연기'에 자기 유행어까지 집어넣는 짓은 그만두라"는 비판이 올라오고 있다. 이 영화의 네티즌 평점은 거의 '테러' 수준. 최저 1점을 줄 수 있는 네이버 평점은 11일 현재 1.22, 최저 0점까지 줄 수 있는 다음 평점은 0.3점이다. 정태호씨는 "최선을 다했으니, 평가는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짧게 심경을 전했다. 김정은씨는 "TV와 DVD까지 합쳐서 170여편에서 주연을 했다"면서 "역할 교체로 화가 났지만 성우는 제작사와 극장보다 을(乙)이니까 별수 없었다"고 했다.

성우들도 발끈했다. '흥행 카드'로 극장용 애니메이션에 인기 개그맨들이 더빙을 맡는 게 관행이 되면서 성우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데다 '성우 비하 논란'까지 불거졌기 때문이다. 지난 2일 KBS '개그콘서트'의 코너 '현대레알사전'에선 개그맨 박영진(32)씨가 "더빙이란 입과 말이 따로 노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 '성우 비하 논란'으로 번진 것이다. 성우 정재헌(38)씨는 개그콘서트 홈페이지에 '대다수 연예인은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하고 아무 준비 없이 와서 적당히 녹음하다 가면서 우리 성우들의 수십 배에 이르는 더빙 녹음료를 챙겨간다'는 긴 글을 올리고 박영진씨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박영진씨는 2011년 애니메이션 '빨간 모자의 진실2'에서 더빙을 맡은 적이 있다.

3~4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개그맨 더빙 러시(rush)는 올해에도 ‘파이스토리: 악당 상어 소탕작전(김병만)’ ‘더 자이언트(김준현·정범균·김지민)’ ‘드래곤 헌터(김기리)’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루 5~6시간 녹음하고 개그맨들이 받는 출연료는 대략 1000만~5000만원 수준. 전문 성우는 한 번 녹음에 100만~200만원 정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우들은 “흥행을 위해 인기 연예인을 투입하는 시류(時流)를 무시할 순 없다”면서도 ‘연기력 부재’를 지적한다. 성우 이정구(51)씨는 “발성도 제대로 안 되는 상태로 유행어를 남발하는 건 작품 수명을 단축하는 일”이라며 “작품 완성도보다는 흥행만을 생각하는 지금 풍토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성우협회 이근욱 협회장은 “지난 8일 엄용수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이 성우협회 세미나에 찾아와 ‘성우 비하 개그’ 건에 대해 사과했다”면서 “상황만 탓할 순 없고, 성우들도 목소리 연마를 통해 연기의 질(質)을 높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