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는 16만명..미혼부들 찾아가봤더니..

입력 2013.06.08 13:55

최진원(가명·26·서울시 구로구)씨는 2011년 3월에 낳은 아들을 2년째 혼자 기르고 있다. 미혼인 그는 혼외정사에서 낳은 아이를 맡아 키우는, 소위 미혼부다.

지난 6월 6일 그와 어렵사리 전화가 연결됐다. 기자가 취재 의도를 설명하자 최씨는 “사연을 얘기해 줄 수는 있지만 만나서 인터뷰를 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미혼부라는 걸 모르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다. 최씨는 일식주점 주방장으로 일하는데, 직장동료들은 최씨가 이혼한 줄로만 안다. 최씨는 “아이 엄마와 결혼할 줄 알았는데, 아이를 낳고 (아이 엄마가) 도망쳤다고 (주변에) 도저히 말할 수가 없었다”며 주위에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최씨는 주변에서 같은 처지의 미혼부를 만난 적도 없다고 한다.

“부모님은 일 년에 한두 번 저를 만날 때마다 ‘넌 어쩜 그렇게 여복(女福)이 없니’하며 혀를 차시곤 해요. 보통은 아이를 낳는다고 하면 남자가 도망친다던데, 저는 그냥 같이 있었거든요. 아이를 낳고 하루 만에 퇴원했던 아이 엄마가 잠시 ‘친정에 다녀오겠다’고 나갔던 게 마지막이었어요.”

최씨는 왜 미혼부가 드물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자신의 경험으로 대신 답했다. “시설 같은 곳에 가면 저보다 나이 많은 미혼모들이 저보고 기특하다고 많이 얘기해요. ‘우리 애 아빠는 나 몰라라 하던데’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책임을 지다니’ 놀라워하는 사람도 있어요.”

기자가 미혼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지난 5월에 있었던 한 아동학대 사건 때문이다. 지난 5월 2일 서울시 송파구 한 도로변 승합차 안에서 7개월 된 아이가 발견됐다. 음식물쓰레기는 물론 오물로 가득 찬 승합차 안에 함께 있었던 사람은 아이의 외할머니 김모(56)씨. 알고 보니 아이의 어머니 김모(39)씨는 미혼모였다. 지난해 11월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를 ‘호적에 올릴 수 없다’며 버티는 상황이었다. 식당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김씨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아이를 떠넘겼고, 일정한 거주지가 없던 아이의 외할머니가 승합차에서 아이를 길러왔다. 아이의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아동학대 혐의로 체포됐다.

아이가 좁은 승합차 안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있을 때, 아이의 아버지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원래 아이의 부모는 동거하고 있었지만 임신 후 헤어졌다. 지난 4월 어머니 김씨는 견디다 못해 아이를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의 한 보육원에 맡겼다. 그런데 아이 아버지가 ‘내 아이를 보육원에서 키울 수 없다’며 다시 아이를 데리고 김씨에게로 왔다. 그런 뒤 아이 아버지는 아이를 맡긴 채 일하러 간다며 지방으로 내려갔다.

취재 도중 만난 미혼모들은 이 사건이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고 말했다. 2001년 22살에 혼자 딸을 낳아 길러 온 미혼모 이미정(가명·34)씨는 “나 역시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아이를 낳기 전만 해도 출산에 긍정적이던 아이의 아버지는, 출산 후 사흘이 지나서 연락이 두절됐다. 어렵게 연락이 닿아 “혼자 아이를 기르기 어렵다”고 호소하자 “네가 선택한 일 아니냐”며 외면했다. 이씨는 “주변 미혼모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책임감 없는 남자들이 참 많다는 걸 느낀다”며 “미혼모는 있는데 미혼부는 왜 없나요?”라며 되물었다.

통계청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2010년 기준, 미혼모자 가정은 16만6609가구. 그러나 미혼 부자 가정은 1만8118가구에 불과하다. 혼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나는 아이는 매년 1만명에 가까운데 미혼모 숫자만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과연 미혼부는 어디에 있을까.

기자가 미혼부를 찾기 위해 가장 먼저 접촉한 곳은 인천시 남동구에 있는 국내 유일의 부자보호시설 아담채였다. 부자 가정 20가구가 살고 있다. 처음 기자가 이곳과 연락이 닿았을 때는 미혼 부자 가정이 입주해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지난 6월 5일 아담채를 찾아갔더니 박은성 원장은 “미혼 부자 가정은 없다”고 말했다. “아담채가 생긴 게 2007년이고, 다녀간 부자 가정만 해도 50가구는 돼요. 그런데 대부분 이혼 가정이지, 그중에 미혼부 가정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전국에서 유일한 부자 보호시설이다 보니 여러 사람이 문의하고 찾아오는데, 미혼부는 한 번도 못 만난 것 같아요.”

지자체마다 운영하는 한부모가족지원센터에서도 비슷한 답변이 돌아왔다. 서울시 한부모가족지원센터의 은주희씨는 “센터에서 가지고 있는 미혼부 사례는 없다”며 “혹시나 싶어 사회복지사들에게 물어봤는데, 미혼부를 알고 있다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광역시 지원센터 관계자는 “아마 우리나라에 미혼부는 없을 것”이라며 “아이 엄마가 아이를 낳아 놓고 가출하지 않는 이상은 미혼부가 생길 수가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기자와 오랜 인연을 맺어온 한 여성운동가에게도 도움을 청해 보았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남자들이 어디, 애 생겼다는 말에 책임지는 경우를 봤냐”는 냉소적인 대답뿐이었다. 바로 얼마 전에도 친척에게 성폭행당해 임신했던 한 10대 여성의 사례를 들면서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은 낙태가 가능하기 때문에 급하게 수술받았지만, 후유증과 심리적 박탈감을 책임져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며 꼬집었다.

지난 6월 4일 서울 종로구 입양인 원가족모임 ‘민들레’ 사무실에서 만난 최형숙 사무국장은 “왜 미혼모는 있는데, 미혼부는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 질문이 모든 미혼모 문제를 압축하는 말”이라고 답했다. 최 사무국장 역시 올해 9살 난 아들을 둔 미혼모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혼인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난 자녀에 대해서도 미혼모는 미혼부에게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다. 미혼부의 양육 책임은 민법 제837조와 제837조의2에 따라 이혼 후 양육 책임과 같이 다루는 것이 보통이다.

대법원 자료를 살펴볼 때 2009년 11월에서 2011년 11월까지 양육비 관련 소송이 접수된 건은 660건. 이 중 612건에 대해 지급 명령이 떨어졌다. 최근에는 양육비 청구 소송의 결과는 자녀를 양육하는 입장, 주로 미혼모의 입장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1월 4일에는 출산 사실을 몰랐다고 하더라도 미혼부는 양육비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판결도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가사1부(부장판사 이광만)는 미혼모 이모(32)씨가 문모(33)씨를 상대로 낸 양육비 청구 소송에서 “부모의 자녀 양육 의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녀의 출생과 동시에 발생”한다며 문씨가 과거의 양육비 920만원을 포함해 매달 70만원을 이씨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여성가족부가 조사한 ‘2012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가구주 2522명 중 다른 배우자에게서 양육비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응답을 한 사람은 83.0%. 자녀 양육비 청구소송을 경험한 사람은 4.6%에 불과했다. 최 사무국장은 “대부분 남자는 미혼모의 결정은 ‘네 선택’이라고 말한다”며 “네가 선택했으니, 네가 책임지라는 말을 미혼모들로부터 한두 번 들은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2011년 9월 미혼모 21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봐도, 미혼부 역시 양육비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미혼모는 87.3%에 달했다. 그러나 미혼모가 임신과 출산을 통보했을 때 미혼부의 반응은 각각 달랐다.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아이를 낳는 것에 찬성한 사람은 38.8%였는데 출산 후 양육비를 주겠다고 한 사람은 13.3%에 불과했다. 임신 사실을 통보했을 때 반응이 없는 사람은 12.2%. 시간이 지나 출산했다고 알렸을 때 반응이 없는 사람은 35.2%에 달했다. 이미정 연구위원은 “남자들이 미혼 상태에서 태어난 자녀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는 것은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발을 빼는’ 경향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2007년 4월, 대학교 졸업반이었던 박혜림(가명·29)씨가 아이의 아버지에게서 들은 얘기도 ‘책임’에 대한 것이었다. 아이의 아버지와 박씨는 3년간 사귀었던 캠퍼스 커플. 졸업 후 결혼할 생각을 하고 서로의 부모도 만났었지만, 박씨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남자의 태도가 바뀌었다. “임신 9주차였어요. 처음에는 부모님께 말씀드리자고 약속했어요. 그런데 하루 이틀 연락이 뜸해지더니 어느날은 아예 연락이 안 되더라고요.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휴학했대요.” 박씨가 임신 4개월차에 접어들었을 때 아이의 아버지는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나버렸다. 박씨는 남자의 부모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다가 상처만 받았다. “저를 무척 귀여워해주던 분들이었는데 만나자마자 ‘낳을 거냐’ ‘아직 너희는 어리다’는 말만 반복하셨어요. 다혈질이던 아버님은 나중에 막말도 하셨지요. ‘내 아들 애가 맞느냐’고요.”

배가 불러 졸업식에도 참석 못한 박씨는 아이를 낳고 나서야 아이의 아버지를 한 번 만날 수 있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박씨에게 “아이를 기를 거냐” 한 마디만 물었다. “사람의 선택에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얘기를 계속 반복하더군요. 제가 ‘아이는 혼자 만들었냐’고 따졌지요. 그랬더니 ‘만든 건 같이 만들었지만, 낳은 건 네가 낳은 것’이라는 어이없는 말을 했어요.” 박씨는 ‘책임’을 묻겠다며 양육비 소송을 진행하기로 결심했다.

미혼 부모가 상대방에게 자녀의 양육비를 청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지’가 돼야 한다. 그러나 소송에 이르는 대부분 미혼모 자녀는 아버지가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하는 상황이라 재판을 통해 강제 인지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는 미혼모가 대부분이다. 김선영 한국미혼모가족협회 사무국장은 아이의 아버지를 재판정에 끌고 오기까지 1년6개월이 걸렸던 경험이 있다.

“처음에는 아이를 함께 기르겠다고, 잘하겠다고 온 가족이 약속했어요. 그러나 입장이 변했고, 결국 2010년 12월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상대방은 재판에 응하지 않았다. 가지고 있던 연락처는 없는 번호라고 나왔고, 가족들은 김씨가 가족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으니 고소하겠다고 나왔다. 김씨는 “소송이 진행되던 1년6개월 동안 아무 도움도 못 받고 아이를 길렀다”며 “아이를 양육하지 않은 미혼부는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고 지냈다는 생각을 하면 화가 났다”고 말했다.

올해로 미혼모가 된 지 14년이 되는 김지선(가명·38)씨가 아이의 아버지에게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010년. 한부모가족지원센터를 통해서다. 1년 넘는 소송 끝에 매달 양육비 50만원을 받게 됐지만 첫 두 달을 제외하고 양육비가 제대로 들어온 적은 없었다. 김씨는 “아이가 커갈수록 돈이 더 들어가는데 텔레마케터로 월 200만원 겨우 버는 월급 가지고는 생활하기 어려웠다”며 “얼마 전부터는 아예 아이 아버지와는 연락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경아(가명·42)씨는 얼마 전 아이가 평생 받아온 상처를 비로소 알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얘기를 했다. 올해로 고3이 된 김경아씨의 딸이 심한 우울증으로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 김씨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아이는 저에 대해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딸이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엄마는 좀 더 행복했을 텐데’ 하며 울더라고요. 자기가 태어나는 바람에 얼굴도 모르는 아빠에게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던 거지요. 나이를 먹을수록 서먹해지는 딸이 그저 사춘기라고만 생각했던 제가 바보였어요.” 김씨는 “벌써 20년은 된 이야기인데, 새삼 무책임한 아이 아빠에게 분노가 치밀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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