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을 통한 경제 성장을 이끌기 위해선 사회 복지보다 보상 체계에 더 신경 써야 한다."
"천만에. 사회 복지가 잘 된 국가에서도 혁신은 일어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는 정부, 북유럽식 복지 국가 모델은 다른 나라에서도 비교 혹은 논쟁의 대상이다. 소득 불균형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미국에서 최근 이 문제가 식자층에서 다시 뜨겁게 거론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시장의 자유와 작은 정부를 앞세우는 미국의 사고 방식은 사회민주주의 전통의 북유럽과는 거리가 멀다. 국민 모두에게 보편적인 복지 혜택을 주는 것보다, 혁신과 성공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발전을 유도할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후 소득 불균형 해소와 사회 복지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바마 정권은 강력한 건강 보험 개혁안을 추진 중이다. 앞으로 미국이 스웨덴 같은 복지 국가로 변화할 가능성은 전혀 없는 걸까. 최근 불붙은 논쟁을 뉴욕타임스(NYT) 온라인 커뮤니티 블로그인 ‘오피니에이터(Opiniator)’가 소개했다.
◆ "북유럽식 성장, '치열한 자본주의'에 기댄 것에 불과"
북유럽식 성장 모델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사회보장 제도가 잘 갖춰진 국가의 경제 성장 동력을 깎아내린다. 대표적인 인물이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대런 에이스모글루 교수. 그는 작년 하버드의 제임스 로빈슨 교수와 파리경제학교(PSE)의 티에리 베르디에 교수와 함께 '세계화 시대에 자기 방식대로 자본주의 택하기(Choosing your own capitalism in a globalized world)', '우리 모두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처럼 될 순 없을까(Can't we all be more like Scandinavians)'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논문에서 경쟁이 치열한 미국식 성장 모델을 ‘냉혹한 자본주의(cutthroat capitalism)’,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하고 평등을 지향하는 북유럽식 성장 모델을 ‘포근한 자본주의(cuddly capitalism)’로 분류했다. 그리고 ‘포근한 자본주의’ 모델을 비판했다. 이들 국가는 스스로 성장한 게 아니라, 미국 같은 ‘냉혹한 자본주의’ 국가가 이끄는 세계 경제 성장 과정에 무임승차해 ‘포근한’ 보상 체제를 세울 수 있었다는 것.
이들은 “상호 작용이 활발한 세계 각국에서는 서로 다른 성장 형태가 나타난다. 치열한 경쟁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를 선택한 국가는 혁신에 대한 좋은 보상 체계로 세계의 혁신을 주도한다. 이런 혁신에 힘입어 일어난 상호 작용으로 다른 자본주의 모델도 함께 발전한다. 미국처럼 ‘치열한 혁신’을 주도하는 나라는 전 세계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경제 성장을 이룬다. 그 대신 불평등이 심해지는 건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썼다.
저자들은 이어 “전 세계가 구글·애플·페이스북 등의 기업이 이끄는 미국의 기술·혁신의 리더십에 의존하고 있다”면서 “‘혁신의 선구자’ 자리를 지키려면 불평등을 감수하더라도 현재의 경제 시스템을 지켜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 "사회 보장과 혁신 함께 갈 수 있다" 반대 주장도
반대로 북유럽 모델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다. 레인 켄워시 애리조나 대학교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북유럽 국가는 사회 보장이 잘 돼 있으면서도 미국만큼 혁신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에이스모글루 등이 주장했듯 '냉혹한' 경제가 혁신을 이끈다면, 호주·캐나다·뉴질랜드·아일랜드·영국 등 (미국과 마찬가지로) 소득 불균형이 문제 되는 국가에서는 왜 혁신이 그만큼 일어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미국이 지금 같은 경제 모델을 유지하는 데는 찬성하면서도, 북유럽식 성장 모델을 달리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하버드 대학교의 대니 로드릭은 “북유럽 국가가 ‘포근한 자본주의’를 선택해 미국이 이끄는 성장에 편승했다는 주장은 믿기 어렵다”는 입장. 그는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북유럽 국가도 점차 미국식 경제 모델로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로드릭 교수는 “북유럽 국가 모델은 역사적·사회적 진화 과정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북유럽이 미국보다 덜 혁신적이라는 생각 자체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 NYT "작년 美 대선도 '복지 모델' 논쟁의 확대판"
블로그 운영자인 토머스 B 에드샐 컬럼비아대 언론학 교수는 "미국의 '냉혹한 자본주의'는 최근 시험대에 올랐다"고 평했다. 최저 임금 층의 사람들은 계속 바닥에 붙들리고 성공한 사람들은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승승장구해 불만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는 “작년 대선 역시 이런 논쟁의 판이 커진 정도로 보면 된다”고 썼다.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는 작년 경선 과정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하던 47%의 유권자를 향해 “자신이 희생자라 믿고 정부에 빌붙는 사람들”이라 말해 논란이 됐다. 반대로 오바마 대통령은 “경제의 성공 덕분에 실제로 이익을 보는 사람이 점차 적어졌다”며 “최고위 부자는 더 부자가 됐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살기 위해 빚만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는 설명이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