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市場경제 정착한 터키에도 '아랍의 봄 2.0'

조선일보
  • 정시행 기자
    입력 2013.06.04 03:04

    [정부의 이슬람주의 정책에 시위 확산… 시위대 1명 사망, 공공노조까지 파업 예고]

    10년 장기집권 에르도안 총리 3選 성공 후 이슬람화 급선회
    주류 판매제한·언론 통제 강화… 중산층 반발, 거리로 뛰쳐나와

    에르도안 총리
    에르도안 총리
    터키의 반(反)정부 시위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 3일(현지시각)까지 전국에서 나흘째 이어진 시위로 총 1700여명이 연행됐다. 시위를 하던 20대 남성 한 명이 사망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조합원 24만명이 가입한 터키 공공노조연맹은 4~5일 반정부 시위 진압에 대한 항의로 '경고 파업'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011년부터 중동 각국에서 일어난 '아랍의 봄'과 비슷해 보이지만 배경과 내용은 전혀 다르다. 튀니지·이집트·리비아 등의 혁명이 심각한 경제난과 장기 독재정권에 신음하던 국민들의 생존권적 요구였다면, 터키는 안정된 중산층이 더 높은 수준의 자유와 문화 향유를 주장하는 '아랍의 봄 2.0'인 셈이다.

    '중동 민주정치의 모범'이 왜?

    이슬람권의 대국(大國) 터키는 지난 2년간 중동·북아프리카를 휩쓴 민주화 혁명의 무풍지대였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일원으로 서방과 머리를 맞대고 각국 소요사태 해결에 나섰다. 지금도 인접한 시리아 내전 난민 수십만명을 수용하고, 국경에 패트리엇 미사일을 배치한 채 알아사드 정권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중동의 기존 핵심동맹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보다도 터키를 더 신뢰하고, 유럽도 오랫동안 미뤄온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을 환영하고 있다.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서구식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나 터키의 외형적 성장에 비해 내부의 환경·언론자유·인권의 가치는 밀리고 있었다고 뉴욕타임스가 3일 분석했다. 이번 시위는 이스탄불의 탁심광장 근처의 작은 녹지(綠地)를 밀어버리고 쇼핑몰을 세우는 데 대한 환경보호론자들의 항의로 촉발됐지만, 이전부터 터키 정부는 '세계 최대'를 내걸고 공항·이슬람사원·교각 건설, 주류판매 규제 강화 등을 밀어붙여 중산층·지식인·전문직 계층의 불만을 샀다. 비판적인 미디어·시민단체에 대한 검열과 탄압도 심했다고 한다. 미국의 CNN 인터내셔널이 시위 상황을 보도하는 동안 터키 정부가 관할하는 CNN 터키는 요리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2일 시위대가‘터키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의 사진이 인쇄된 국기를 들고 반(反)정부 구호를 외치고 있다.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2일 시위대가‘터키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의 사진이 인쇄된 국기를 들고 반(反)정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아타튀르크는 1923년 술탄제를 폐지하고 공화국을 세울 당시 이슬람교와 단절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추구하며 터키 근대화의 초석을 닦은 인물이다. 시위대는 10년째 집권 중인 에르도안 총리가 보수적 이슬람 정책으로 나라를 퇴행시키고 있다며 아타튀르크를 들고 나왔다. /AP 뉴시스
    집권 10년 후 최대 위기

    갈등의 핵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59) 총리다. 전국에서 각계각층의 국민이 "에르도안의 권위주의적 행태를 못 참겠다"며 쏟아져 나오는데도 "야당이 10만명을 동원하면 나는 100만명을 동원할 수 있다" "일부 폭도들의 난동일 뿐"이라며 기존 시책을 수정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3일 이번 시위를 '성공에 취한 에르도안의 오만이 부른 문화 전쟁'으로 규정했다.

    에르도안 총리는 2002년 이래 보수우파인 개발정의당을 세 번 연속 승리로 이끌며 10년 넘게 재임했다. 빈민의 아들로 태어나 이스탄불 시장을 지냈고, 부패하고 무능한 좌파 정권하에서 2년간 야인(野人)으로 전국을 돌며 국민 4만명과 면담했다고 한다. 집권 초기 민생(民生)에 집중해 국내총생산(GDP)은 3배 성장했고 빈곤율·실업률은 절반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2011년 3선 성공 이후부터 이슬람주의를 내세우면서 장기집권을 위한 개헌을 추진하고, 가족과 당 수뇌부의 부패 스캔들을 통제하지 못하면서 민심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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