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스트레스 | 탁석산 지음 | 창비 | 248쪽 | 1만3000원
행복은 역사가 200년밖에 안 된 발명품이다. 행복이 애초 인간의 본성과는 무관한 '텅 빈 개념'이라는 이 책의 주장은 사뭇 충격적이다. 그렇다면 아침 방송에 단골로 등장하는 행복 전도사들과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베스트셀러는 다 뭐란 말인가. 저자는 "행복은 좀처럼 얻기 어렵고 지속하기도 매우 힘들다"면서 "우리는 너나없이 '행복 스트레스'에 갇혀 있다"고 썼다. 이 책은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행복, 그 강박관념에 대한 탐구다.
◇행복에 대한 철학적 의심
플라톤은 모두 눈에 보이는 것에 빠져 있을 때 이데아를 내세우며 정의를 주장했고, 니체는 서양 사회가 신(神) 중심의 사고에 갇혀 있을 때 신의 죽음을 선언했다. 저자 탁석산은 철학자로서 이 시대의 화두이자 지배적 이데올로기인 행복에 대해 의심하고 회의한다. 행복에 대한 스캔들을 들추는 셈이니 이만큼 강력한 소재도 드물다.
영어 'happiness'의 본뜻은 '행운'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영국 철학자이자 법학자 제러미 벤담이 1789년 저서에서 공리주의(功利主義)를 주장하면서 행복을 쾌락과 같은 의미로 처음 사용했다는 것을 발견한다. 바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다. 아시아에서 행복은 1860년대 이후, 일본에서 처음 쓰였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고 번역하면서 '행(幸)'과 '복(福)'을 합성해 빚어진 일이다. 일본어에 'happiness'나 불어의 'bonheur'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1886년 10월 4일자 한성주보(漢城週報)에 '행복'이란 낱말이 처음 등장했다.
300년 전에는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신의 은총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현대인은 누구나 노력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쉽게 믿는다. "이제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은 인간"(알랭 드 보통)이다. 행복은 그렇게 신을 대체하며 '세속종교'가 되었다.
저자는 "지금 행복과 불행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것은 개인주의"라고 진단한다. 신과의 연결이 끊어지면서 개인은 고독해졌다. 반면, 모두가 평등한 민주주의 시대는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는 착각을 불렀다. 행복하고자 하는 마음과 실제로 행복하지 않은 현실 사이의 괴리를 행복이라는 추상명사가 메워주는 셈이다. 고립에서 벗어나려고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을 하지만 외롭다는 진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행복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면
행복은 삶을 왜곡한다. 영국 문화사학자 리처드 스코시는 "자기 계발서의 연간 매출액은 10억달러이며 항우울제 시장이 170억달러에 육박할 만큼 행복은 유망 성장산업"이라고 말했다. 행복은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감기약이나 소화제 취급을 받고 있다. 이 책은 "역설적이지만 방송과 책으로 나오는 '행복 상인' '범람하는 멘토'는 행복 스트레스의 방증"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개인과 사회의 이분법으로는 행복을 찾기 어렵다"면서 대안으로 '3분의 1 원칙'을 내놓는다. "행복의 구성단위는 개인(나), 이웃(가까운 사람), 사회(어려운 사람)다. 어떤 일이 좋은 일이 되려면 자신, 가까운 사람, 어려운 사람이 골고루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의 마음 닦기를 강조하는 숱한 자기 계발서와 달리 이 책은 개인에게는 수행을, 가까운 사람에게는 예의를, 사회에는 평등과 공동의 부(富)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행복은 어떻게 현대의 신화가 되었나'라는 부제를 달았다. 행복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행복이라는 거짓말'에 속아본 독자일수록 책장이 빨리 넘어간다. "행복과 불행은 한 묶음이다. 불행이 없다면 행복도 없다. 행복이라는 개념에서 떠나면 불행에서도 동시에 떠날 수 있다"는 말에 수긍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타인의 인정을 받을 만한 업적이나 성취를 행복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럴수록 행복감을 느끼기 어려워진다"(서은국 연세대 교수)는 진단도 참고할 만하다. '행복하세요'라는 말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알겠다. 대신 이렇게 말하자. '행운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