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사순 고려대 명예교수 한국철학

요즈음 동아시아의 분위기는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의사의 '동양평화론'과 의행(義行)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안 의사가 지녔던 사상은 20세 무렵까지 익힌 유학과 그 뒤에 접한 천주교 사상이었다. 특히 뤼순 감옥에서 남긴 글귀들을 보면, 그는 유학의 정수들을 거의 학자 수준으로 습득한 사상가였다. 승마와 궁술 등을 익혀 문무를 겸전한 그는 30세 이후에는 의병대장으로서 의병군을 이끌었다. 경흥(慶興)의 왜군을 공략하여 이룬 전과부터가 그의 업적이지만, 동양평화론 또한 그것 못지않게 존귀한 그의 사상적 업적으로 꼽힌다.

안 의사에게는 우리 전래의 홍익인간관이 자리한 터에, 유학의 인애사상 외에도 불교의 자비사상과 예수의 이웃사랑사상까지 더해졌으므로, 그에게서 '동양평화론'이 나온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그러한 안 의사가 1909년 하얼빈 역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사실은 그의 사상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숙고해 볼만한 것이다.

일찍이 석가가 자비를 제일의로 교시한 데에는 인간 사회의 평화를 이루려는 뜻이 있었지만, 그 평화 파괴의 방지책으로는 무지(無知)에 따른 어리석음과 탐욕과 화내는 마음을 경계하는 수양을 강조하는 데서 그쳤다. 이에 견주어 공자 등은 수양과 함께 인애(仁愛)를 바탕으로 한 덕치를 통한 이상 사회(大同社會)의 구현을 지향하면서, 온 세계를 '공(公)의 기준'으로 삼는 유학의 사고(天下爲公)를 제시했다. 이에 인류 전체의 평화로운 공생·공영이 인간 삶의 바른 원리라는 유학의 의리관, 곧 보편적 정의관이 생기게 되었다.

이는 인류의 평화를 깨뜨리는 외민족에 대한 탐욕적 침략행위는 '인도주의의 당위성'에 어긋난다는 의미에서 정의를 해치는 것을 의미하는 사상이다. 정의를 해칠 때에는 만인의 공분(公憤)마저 사게 됨은 물론이다. 공분도 실은 맹자의 견해로는 의(義)의 한 종류에 속한다. 이런 사고로 보면, 안 의사의 의병활동과 이토 사살은 어디까지나 평화를 위한 정의감과 공분에 뒷받침된 의행이었다. 평화주의자인 안 의사의 거사는 이렇게 이해해야 맞는다.

요즈음 일본의 일부 정치인들이 과거 그들의 한국침략을 부정하거나 엄폐하는 행태를 서슴지 않는 사실을 목도하면서, 나는 오히려 안 의사의 생생한 역사철학적 교훈을 그들에게 일깨워 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