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명예의 전당 헌액되는 유명우 "기쁘고도 슬픕니다"

  • 뉴시스
    입력 2013.05.26 09:22

    멋지게 포즈 취하는 유명우 전 세계챔프
    전 세계복싱협회(WBA) 라이트플라이급 세계챔피언 유명우(49) YMW버팔로프로모션 대표가 국제복싱 명예의 전당(IBHOF)에 헌액된다.

    아시아 4번째, 한국에서는 장정구(50)에 이어 두 번째 헌액자다. 하지만 화려하고 꾸준했던 현역시절 성적을 감안한다면 다소 늦었다는 평가다.

    "개인적으로는 무한한 영광"이라고 밝힌 유 대표는 하지만 "현재 (권투계)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 마음은 무겁다"고 복잡한 속내를 드러냈다.

    ▲아시아 4번째, 한국인 두 번째 명예의 전당입성 유 대표의 명예의 전당 입성은 지난해 12월에 결정됐다. 헌액자는 프로복싱기자협회(BWAA)와 국제복싱 역사가들이 투표로 결정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아투로 가티(캐나다)와 버질 힐(49·미국)이 유 대표와 함께 2013년 헌액자로 선정됐다.

    명예의 전당에는 이미 초대 헌액자인 무하마드 알리(71)를 포함해 슈거 레이 레너드(57), 마이크 타이슨(47·이상 미국) 등 쟁쟁한 거물들이 이미 이름을 올렸다.

    유 대표는 하라다 마사히코(70·일본)와 태국의 카오사이 갤럭시(54·태국), 장정구(한국)에 이어 아시아 출신으로 4번째 헌액자다.

    한국 복싱은 2010년 장정구에 이어 3년만에 유명우가 두 번째 헌액자로 맞는 겹경사를 맞았다. 또한 한국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2명의 헌액자를 보유한 국가가 됐다.

    "장정구 선배에 이어 3년 만에 한국인 두 번째 헌액자로 뽑혀 개인적으로 굉장히 영광스럽다"고 운을 뗀 유 대표는 "어릴 때는 챔피언을 목표로 운동해 꿈을 이뤘고 은퇴하고서는 명예의 전당까지 오르게 돼 더욱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유명우는 현역 시절 철저한 자기 관리와 혹독한 훈련으로 세계 최강자의 반열에 올랐고 수많은 강자들을 무너뜨려 명성을 쌓아갔다. 엄청난 체력에서 나오는 투지와 현란한 풋워크에 이은 속사포 같은 연타는 상대를 질리게 만들 정도였다. 유명우와 대결하는 상대에게 그는 '독종' 그 자체였다.

    유 대표는 다음달 4일 미국 뉴욕 캐너스토타로 떠나 같은 달 6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열리는 헌액식에 참석한다. 핸드프린팅, 캐너스토타 시내 카퍼레이드 등 다양한 관련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헌액사는 준비했느냐"고 묻자 유 대표는 "아직 준비 못했다. 이제부터 고민해봐야겠다"고 웃었다.

    ▲첫 챔피언타이틀이 가장 기억에 남아

    1982년 프로에 데뷔한 유 대표는 1985년 12월 미국의 조이 올리버(55)를 물리치고 생애 첫 챔피언 타이틀을 품에 안았다. 유 대표는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목표였던 챔피언 벨트를 둘렀을 때다"고 회상했다.

    이후 유 대표는 17번의 방어전을 치르는 약 6년간 정상의 자리를 굳게 지켰다. 유 대표가 세운 '17차 방어'는 이 체급 최다이자 한국 프로복싱 사상 최다다. 한국 복싱에서 다시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프로 36연승'의 기록도 세웠다.

    고비는 18차 방어전이었던 이오카 히로키와의 대결이었다. 1991년 12월 일본에서 이오카와 18차 방어전을 치른 유 대표는 석연찮은 판정패를 당하면서 타이틀을 뺏겼다. 17차 방어의 대기록, 프로 36연승, 무패 챔피언으로 은퇴하겠다는 꿈도 모두 깨졌다.

    유 대표는 "프로에서 한 번도 패배한 경험이 없다가 지니깐 너무 상심이 컸다"며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들이 물거품처럼 느껴져 못 견디겠더라"고 돌이켰다.

    하지만 유 대표는 1년만인 1992년 11월 적지에서 이오카로부터 빼앗긴 챔피언 벨트를 되찾았다. 우리나라 최초로 같은 기구 같은 체급에서 두 차례 챔피언에 오른 선수가 됐다.

    유 대표는 1차례 방어전에 성공한 뒤 1993년 챔피언벨트를 반납하고 링에서 내려왔다.

    유 대표는 "주위에서 바로 복수전을 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셨다"며 "또한 이오카가 2차례 방어전을 무난히 성공했기 때문에 다시 싸울 수 있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행운아였다고 생각한다"고 돌이켰다.

    유 대표의 프로전적은 39전38승(14KO) 1패다. '작은 들소' 유 대표는 단 한 차례도 링에 눕지 않고 글러브를 벗었다.

    ▲YMW버팔로프로모터 대표 유명우

    유 대표는 2차례나 한국권투위원회(KBC) 사무총장에 선임됐지만 단 한 번도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유 대표의 잦은 사임은 분열을 거듭하는 한국 복싱계를 보여주는 슬픈 단면이기도 하다.

    2009년 7월 세계챔피언 출신 첫 사무총장으로 임명된 유 대표는 전임 김주환 회장과 마찰 끝에 5개월여만인 그해 12월 사직서를 제출했다.

    2012년 1월에는 한국권투위원회 비상대책위원회 전국총회를 통해 홍수환 회장과 함께 사무총장에 선임됐지만 전임 집행부와 끝없는 갈등을 빚었다.

    유 대표는 그해 6월 법원이 "소집절차와 결의 과정의 결함"을 이유로 홍 회장 선출 무효 판결을 내리면서 힘이 빠졌고 결국 올해 초 다시 야인으로 돌아왔다.

    권투인들이 내분을 거듭하는 사이 한국복싱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2007년 지인진(40)이 챔피언벨트를 반납하고 종합격투기로 떠난 뒤 단 한 명의 세계챔피언도 배출하지 못했다. 유 대표가 "인기가 매구 높아서 암표까지 성행했다"고 추억하던 복싱 열기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야인이 된 유 대표는 지난 5월 지인진 전 챔피언과 故 최요삼의 동생인 최경호(37) 본부장과 함께 YMW버팔로프로모션을 설립했다.

    유 대표는 "모든 내부 잡음은 나를 포함한 모든 권투인의 잘못이다. 잘 나갈 때, 좋을 때 미래를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큰 액수의 대전료 등 파이가 커지고 경기가 많아지면 좋은 선수들이 프로복싱에 입문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프로모션을) 세우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내가 링에 올라가서 뛰는 게 훨씬 낫지 옆에서 보니깐 정말 죽겠다. 손에 땀이 나고 더 긴장된다. 선수로 뛰는 게 훨씬 속 편하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선수들이 외국에서 이기면 보람도 느껴지고 코끝이 찡하더라"고 웃었다.

    유 대표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선수는 한국 남자 프로복싱 유일의 동양 챔피언 김민욱(26·대성권투체육관)이다. 슈퍼라이트급인 김민욱은 오는 8월18일 일본 호소가와 발렌타인(일본)과 4차 방어전을 치른다.

    유 대표는 "(김)민욱이는 아마추어 국가대표까지 지냈기 때문에 기본기가 탄탄하다. 볼 때마다 부쩍 실력이 늘어있다"며 "내년 정도에 세계챔피언이 될 수 있도록 조율하고 있다. 피겨스케이팅이 김연아 때문에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복싱인기도 스타가 나오면 부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명우 대표 프로필

    ▲생년월일 : 1964년 1월10일
    ▲출신학교 : 삼성초~한강중~인천체고
    ▲주요 경력 : 1982년 프로입문, 1984년 동양태평양복싱연맹(OPBF)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1985년 WBA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1991년 WBA 선정 올해의 복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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