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leader)가 되기 전 갖춰야 할 자질은 좋은 팔로어(follower)가 되는 겁니다. 한국에서 여성 대통령 선출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는데,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리더를 뽑을 때 인종·종교·성별보다 그 사람의 정신력과 살아온 궤적을 우선하기 시작했다는 변화를 느꼈기 때문이에요. 좋은 리더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빗방울이 아닙니다."

2003년 미국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를 졸업, 강연과 저술을 통해 '웨스트포인트 리더십'을 전파하고 있는 프레스턴 피시(Pysh·32)가 최근 서울에 왔다. 웨스트포인트(Westpoint)는 2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 최고의 육군장교 양성기관이다.

프레스턴 피시는 “우선순위를 직접 써보라.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 우선순위에 없는 건 과감히 버리라”고 말했다.

육사 졸업 후 앨라배마 주 포트러커의 항공학교에서 아파치 공격 헬기를 조종하고, 2005~2007년에는 주한미군 공격 헬기 소대장·대대부관·작전보좌관 등을 역임한 그가 육사 경험과 리더십을 접목해 웨스트포인트 리더십을 창안한 이유는 바로 자신 때문이었다. "생도일 때 제가 저지른 무수한 실수를 정리해 주니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지금의 주니어가 훗날 리더가 되니까요. 넘쳐나는 리더십 시장에서 육사는 건드린 사람 없는 블루오션(경쟁자가 없는 유망한 시장)이라는 점도 좋았습니다(웃음)."

2007년 미국으로 돌아가 육군항공병과 소령으로 근무 중인 피시는 '파일런 홀딩 컴퍼니'란 회사를 세우고 세계를 돌며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미 육군은 도덕적 흠결만 없으면 군 복무 중 기업 CEO를 병행해서 맡을 수 있다고 한다. 2005년 만나 결혼한 한국인 부인 사이엔 7개월 된 아들 타일러(Tyler)를 두고 있다. 그 아이의 가운데 이름은 '서울'이다.

"미국 리더들은 창조에 관심이 많고, 한국 리더들은 규율을 좀 더 강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에 창의성과 규율은 음과 양입니다. 음양이 조화를 이룰 때 100점짜리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죠."

그가 강조하는 선후배 관계가 뚜렷한 군대식 상명하복 시스템이 한국 사회에 오히려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을까 궁금하다고 했더니 그는 "맞는다. 혹자는 육사 생도들이 지켜야 하는 규율과 규칙을 틀에 박힌 경직성으로 잘못 이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창의적 사고를 방해하는 엄격함이 아니라 창의력 생산을 배가하는 균형과 질서임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육사에선 3~4학년 선배들의 세탁물을 1학년 생도들이 날라야 했습니다. 순서도, 선배 중 직급이 최고인 사람에게 먼저 전달돼야 했죠. 선배들의 방해도 만만치 않았던 게, 먼저 나서는 1학년 하나를 잡아 다짜고짜 퀴즈를 내고, 복장이 불량하다며 시비를 걸었습니다. 앞사람이 제때 전달을 못 하면 뒷사람들은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마냥 기다려야 했죠."

그는 "선배들의 공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고민하는 과정에서 생활형 리더십이 나왔다"며 "일부러 선배들 주의를 끌 희생양을 만들어 내보내고, 선배들 관심이 그에게 쏠려 있을 때 나머지 학생이 재빨리 세탁물을 날랐다. 거기서 창의성과 팀워크를 배웠다"고 했다. "부하들이 볼 때 상사의 명령이 이상하다 싶을 때가 간혹 있어요. 일단 존중하세요. 그런 지시를 내린 덴 다 이유가 있거든요. 훌륭한 리더는 그게 이상하단 것도 알고 있어요."

군인이 되는 걸 동경한 적 없던 그가 육사 진학을 꿈꾼 건 고1 때 사촌형이 다니고 있던 육사를 견학한 후부터다. "C학점도 받는 평균 B학점짜리 제가 갑자기 전 과목 A를 받아야 했으니 그 과정은 고되었죠." 그는 "성공이란 운 좋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신비스러운 것이 아니다. 기본 덕목을 꾸준히 실천하면서 얻게 되는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