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선의 태평로] 대한민국 정부의 '남녀칠세부동석' 해법

    입력 : 2013.05.23 03:00

    강인선 국제부장 사진
    강인선 국제부장

    정홍원 총리가 최근 태국을 방문했을 때 일정 수행을 위한 인턴은 남자만 뽑고, 건배는 술이 아니라 오렌지 주스로 했다고 한다. 이른바 '윤창중 사건' 학습 효과다. 박근혜 대통령 방미 중 있었던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여성 인턴 성추행 의혹과 유사한 사건이 또 일어날 것을 우려해 총리실은 술과 여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총리가 태국 방문 중 찍은 행사 사진 한 장은 노심초사했던 총리실의 심정을 보여준다. 오찬 테이블 위에 놓인 유리잔에는 와인 대신 노란 오렌지 주스가 담겨 있다.

    평소 남녀 섞어 뽑는다던 인턴 3명은 왜 전원 남성이 됐을까. 보도에 따르면, 정부 관계자는 "아침부터 밤까지 강행군하는 일정이라 남성을 많이 뽑았을 뿐 일부러 여성을 배제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공무원들 사이에서조차 "윤창중 사건의 교훈이 총리의 태국 방문에 스며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총리실이 보여준 극도의 조심성은 또 있다. 주(駐)태국 대사관에 여성 행정원이 있는데, 업무를 조정해 이 직원이 총리 수행 공무원이나 기자들과 접촉하는 빈도를 최소화할 것이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수행원들이 여성 행정원과 함께 일하는 시간을 줄여 문제 발생 가능성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동행했던 공무원이나 기자들을 잠재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집단으로 본 셈이니 그들 입장에선 기가 찰 일이다.

    그뿐인가. 정 총리는 출국 전 간부들에게 "술을 못 마시는 사람만 수행원으로 데려갈까 하는 생각도 했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음주 자제를 기대하기는 어려우니 차라리 '음주 불능자'가 낫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정 총리는 윤창중 사건으로 엉망이 된 대통령의 방미 후 처음으로 해외에 나가게 됐으니 신경이 쓰였을 법도 하다. 유사 사건 발생을 막아야 한다는 참모들의 절박한 심정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렇게 나온 대책이 여성 인턴 안 뽑고, 현지 여성 직원과 수행단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라니.

    인턴 3명을 전부 남자로 뽑았던 건 어쩌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진짜 문제는 총리실이 이 과정에서 보여준 윤창중 사건에 대한 인식이다. 우리 정부가 윤창중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또 이런 문제를 어떻게 예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가 은연중 드러났다. 결국 총리실은 윤창중 사건에서 술과 여성의 존재 자체가 문제였다고 보고 그 두 가지만 차단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더 씁쓸한 것은 '윤창중 학습 효과'에 골몰하느라, 여성이 대통령인 한국의 총리가 역시 여성이 총리인 태국을 방문하면서도 무신경하게 여성 인턴부터 배제하는 단순 대응을 한 점이다.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 누군가 배제돼야 한다면 그 대상은 잠재적 가해자이지 잠재적 피해자가 아니다.

    정 총리의 태국 방문 에피소드는 정부가 하기에 따라 윤창중 사건의 학습 효과가 엉뚱한 데로 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윤창중 사건은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 요직에 임명되면서 시작됐고, 윤 전 대변인 본인이 부적절한 처신과 권력 남용으로 사고를 친 일이다. 이미 인터넷에선 비판과 한숨의 소리가 높다. "정부가 본질적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안 하고 피해 갈 궁리부터 한다" "남성 인턴과 관련해 문제가 생기면 그땐 남성 인턴을 안 뽑을 작정이냐" "성차별이란 또 다른 문제를 만들 거냐"고들 한다.

    정부의 일이란 기본적으로 문제 해결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를 제대로 봐야 한다. 윤창중 사건 재발을 막겠다고 당장 여성 인턴 뽑기부터 중단하는 식으로 거꾸로 가는 대응책을 내놓는 정부라면 조만간 '남녀칠세부동석'을 해법으로 내놓을지도 모른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