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취재 인사이드] 실리콘밸리 협상왕 유기돈 샌프란시스코 49ers 구단주 "나라도 김종훈처럼 한국 떠났을 것 같다"

입력 2013.05.15 03:04 | 수정 2013.05.15 18:34

이신영 경제부 Weekly BIZ팀 기자

 지난해 2월부터 조선일보의 주말 경제경영 프리미엄 섹션인 위클리비즈(Weekly BIZ)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15개월 동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3명과 글로벌 CEO 및 경영 대가(大家) 30여명을 인터뷰했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올 3월 16일자 Weekly BIZ 1,3면을 장식한 유기돈(42·Gideon Yu)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49ers)팀 구단주입니다.

샌프란시스코 49ers는 올 2월 수퍼볼(Superbowl·미식축구 결승전)에서 준우승하고 지금까지 수퍼볼 우승을 5차례 해 미식축구 ‘최다 우승 구단’ 순위 2위의 명문팀이죠.

서울에서 태어나 1세 때 아버지를 따라 미국 테네시주로 건너간 유기돈씨는 고교시절 국제수학경시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답니다. 스탠퍼드대(산업공학과) 졸업후 투자은행에 취직해 번 돈으로 하버드대 경영대학원까지 마쳤는데, MBA 졸업후 취업한 벤처 기업 2개가 2년도 안돼 모두 망하는 바람에 31세에 5만달러의 빚을 진 실업자가 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당시 무명(無名)이던 야후(Yahoo·2002년 입사)를 시작으로 유튜브(Youtube·2006년), 페이스북(Facebook·2007년)로 옮기면서 세 회사에서 모두 CFO를 맡아 각각 5~100배 이상 회사 규모를 늘렸습니다(매출액 기준·입사 당시와 퇴사 때 비교).

그는 저와 만난 자리에서 “야후 CFO 시절 40건의 M&A를 했고 페이스북에선 마이크로소프트(MS)와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에게 지분 3억7500만달러 어치를 팔아 세계적 기업으로 키웠고 유튜브 CFO때는 구글(Google)에 유튜브를 매각했다”고 했습니다. 그가 세 회사에서 운용한 자금만 100억달러(약 10조원)에 달합니다.

그는 작년 2월 미국 메이저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계 구단주가 됐고 ‘실리콘밸리 100인’(비즈니스인사이더·2013년),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인사’(포브스·2011년)에 선정됐는데 ‘10여년 만에 실패자에서 성공자’로 인생 역정이 드라마틱했습니다.

그래선지 제가 쓴 기사는 3월 16~17일 이틀만에 조선닷컴에서 10만건이 넘는 클릭 건수를 기록했고 출판사 2곳이 유기돈 구단주의 역정과 철학을 담은 책을 내고 싶다고 연락해 왔습니다. 여러 대학생과 기업인들로부터 “그의 멘토링을 직접 듣고 싶다”는 문의가 쇄도했고, 잡지사를 포함한 10여개 매체에서 이 기사를 다시 싣고 싶다는 문의가 빗발쳤습니다. 열광적인 호응이 실감났죠.

1년 만에 성사된 만남… ‘실리콘밸리의 협상왕’이란 사람이 휴대전화엔 단 100명만 저장

하지만 그를 인터뷰하는 과정은 참 험난했습니다. 1년 전쯤부터 접촉을 시도했지만, 도통 회신이 없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곧바로 연결되는 그의 연락처를 알아 올 2월 샌프란시스코49ers가 슈퍼볼 진출을 확정한 날, 다시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우승이든 준우승이든 이제는 만날 때다”라고요.

하지만 만나기 이틀 전, 비보(悲報)가 날라왔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인터뷰가 힘들다”는 메일이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저는 무조건 “한국이 당신을 원한다. 우린 꼭 봐야 한다. 장소가 어디든, 시간이 어떻게 되든 무조건 달려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겨우겨우, 하루 전에야 인터뷰가 확정됐습니다.
그가 근무하는 샌프란시스코 동쪽 해변 부근에 있는 캔들스틱(candlestick)구장에 갔더니, 햇빛은 쨍쨍한데 바람이 몹시 불었습니다.

“이런 자랑스러운 곳에 한국인이 있다니.” 이런 상념에 잠깐 잠길 무렵, 그가 눈앞에 번쩍 나타났습니다.

그는 가장 먼저 "왜 나를 만나자고 했느냐?"고 묻더군요. 지금까지 그의 인생 스토리를 제대로 다룬 한국과 미국 언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얘기하자, 그는 “와우!”라고 크게 소리치면서 엄청난 영광이라고 너스레를 떨더군요. 그냥 미식축구에 대해서나 물어보겠거니 했나 봅니다.

이후 1시간 30분간의 인터뷰는 너무 신나 꼭 계속 말을 이어가고 싶다는 느낌이 줄곧 들었습니다. 그는 ‘행복 바이러스’를 확실하게 발산하는 사람이었고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특이하게도 그가 말하는 모든 문장에는 '매우 매우'(very very)', 'so hard(아주 열심히)'', 'so thankful(너무 감사하다)' 같은 단어들이 꼭 포함돼 있었습니다. 다른 주제로 질문해도 꼭 미식축구나 자신의 과거 상사가 해준 말들로 답변을 매듭지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현재 자리에 대한 ‘열정’과 과거 자신의 멘토들에 대한 ‘감사’, 이 두 가지로 아주 끈끈하게 엮여 있었습니다. 중간중간 과거의 어려움이 생각나는지 눈가에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습니다.

그와의 90분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인 언급은 세가지인데, 첫번째는 이것이었습니다.

“나는 안전한 길을 택하기 싫었어요. 저는 제 열정(passion)이 부르는 대로 살아가고 싶었어요. 저는 제 사회생활 내내 열정을 따라갔고 거기에서 큰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대기업을 택했다면 지금도 중간 매니저 밖에 못했을 것이다. 나는 세상에 두 번 다시 안 올 역사를 바꾸는 현장에 있다는 걸 절감했고 인터넷을 사랑했기에 야후, 유튜브, 페이스북에 입사했다”고 했습니다. 취업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구하자, “장기적으로 욕심을 내야한다(Be a longterm greedy!). 장기적 성공 방정식의 답은 성장 가능성이 큰 중소기업 입사와 창업이다”고 단언했습니다.
약간 생뚱맞게도 저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같은 실리콘밸리 '거물'들의 전화번호가 그의 휴대폰에 몇명이나 저장돼 있는지 궁금해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자기 휴대폰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딱 100명이다”고 답했습니다. “친한 실리콘밸리의 인사들과 전화는 거의 하지 않고 메일로만 소통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편하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장군 이름을 딴 이름… 모의 간절한 기도와 지원이 큰 힘

두번째로 그가 존경하는 인물이나 영웅이 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유기돈씨는 이에 대해 “나의 아버지가 내 인생의 영웅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1970년대초 보수적인 미국 남부 지방의 목사로 일했는데, 교회에서 나오는 사례금은 받지 않고,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어머니가 버는 돈으로 근근히 생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기돈씨는 “과거를 돌이켜볼 때 가난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돈은 한푼도 없다시피 살았지만, 우리 가족의 삶의 행복지수는 높았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남동생과 나를 키울 때 우리가 누구로부터 동정받지 않게 해줬습니다.


유기돈씨가 스탠포드대 입학허가서를 받은 후 학비(2만 5000달러)를 감당하지 못해 망설이자, 아버지는 아들 몰래 입학허가서에 서명해 보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내가 학교에 가서 무릎을 꿇어서라도 너가 입학되도록 사정하겠다’고 말씀했지요.” 그는 학자금 대출과 아르바이트 같은 고학(苦學)으로 대학을 마쳤습니다.

사회 생활 초기에 실패를 거듭했던 그는 지금은 큰 돈을 모아 돈 걱정은 잊은 듯 했습니다. “유튜브 매각 때는 서무 직원조차 100만달러 돈방석에 앉았다”고 했으니, 당시 CFO였던 그는 그 수십배는 벌었겠지요.

유기돈씨의 이름은 구약성서의 사사기에 나오는 ‘기드온(Gideon)’이란 인물에서 따왔답니다. 기드온은 므낫세족출신 300명 장병을 이끌고 미디안인 대군을 무찔러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한 왕으로, ‘베어 쓰러뜨리다’란 뜻입니다. 유기돈씨는 “기드온이란 이름처럼 나도 살아왔다”고 하더군요. 어려움 속에서도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이뤄냈다는 뜻에서라고 생각됐습니다.

“나라도 김종훈 미래부 장관 사퇴자처럼 한국을 떠났을 것 같다”

마지막 인상적인 대목은 그가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고 한 부분이었습니다. 몇몇 한국기업의 자문이나 사외이사도 굉장히 열심히 잘 할 자신이 있다고 했습니다.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서 사퇴한 김종훈씨 상황이 순간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그래서 ‘김종훈씨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답했죠.

“나 역시 미국 시민권자이고 한국말을 못하는데 그게 결격사유가 된다면 한국에서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걸어온 인생경로에 자부심을 항상 느끼고 있거든요.”

그는 "한국말은 물론 열심히 연습해야지만, 내가 만약 한국에서 제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면 그건 아무 문제가 아닐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유기돈 구단주에겐 또다른 꿈이 있더군요. 올해 스탠포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스포츠와 경영’이란 주제로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미래의 꿈이 교수냐고 물었더니, 그는 껄껄 웃으면서 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에휴, 할 것이 너무도 많아요. 물론 어느 순간에 가르치는 일을 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직 저는 인생을 배우고 있어요. 제 인생 점수는 아직 10점 만점에 6~7점 정도밖에 안돼요. 매우매우 모자라요. 하하하하하.”

“‘열정’을 따라갔더니 미국 실리콘밸리의 최고가 됐다”는 유기돈 구단주, 그가 5,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탈바꿈해 있을지 참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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