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맨살 부딪치는 뜨거운 영화… 보고 나면 시린 눈물이 찔끔

조선일보
  • 변희원 기자
    입력 2013.05.13 03:02

    셰임

    '전라(全裸) 노출'이란 일부 기사의 자극적인 문구 때문에 스티브 매퀸 감독의 '셰임'을 택한다면, 낭패를 볼 것이다. 주인공 브랜든(마이클 파스벤더)의 단단한 육체와 이름 모를 여성들의 풍만한 육체가 화면 속에서 수차례 뒤섞이지만 여기서 어떤 자극을 받기란 참 힘들다. 그토록 뜨거운 화면에서 내뿜는 서늘한 냉기에 소름이 돋을 순 있겠다. 그래서 큰 화면으로 야한 영화를 보겠다는 속셈(?) 때문에 영화표를 샀더라도 결국은 눈물을 찔끔거리며 극장을 나설 것이다. '셰임'은 욕망 때문에 육체와 정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가여워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영화다.

    여동생 씨씨와 직장상사를 집에 들여보내고 혼자 아파트 복도에 서 있는 브랜든.
    여동생 씨씨와 직장상사를 집에 들여보내고 혼자 아파트 복도에 서 있는 브랜든. 자신의 공간을 침범당한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그는 집을 나와 맨해튼을 하염없이 뛰어다닌다. /백두대간 제공
    뉴욕의 여피인 브랜든은 겉으로 보기에 완벽에 가까운 삶을 산다. 돈을 잘 버는 전문직에다 업무능력도 탁월한 독신남이다. 훤칠한 외모에 매너도 좋아서 노력하지 않아도 여자들이 먼저 다가온다. 하지만 그는 하루종일 섹스만 생각하는 성(性)중독자. 회사 컴퓨터는 온갖 포르노로 꽉 찼고, 음란채팅에 성매매까지 안 하는 게 없다. 성에 대한 그의 집착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초인적 수준이다. 어느 날 불쑥 찾아온 여동생 씨씨(캐리 멀리건)는 브랜든의 삶을 흔들어 놓는다. 집에서조차 은밀한 활동을 할 수 없자 그는 초조해진다. 가수인 씨씨도 문제가 많기는 마찬가지다. 경제적으로 자립을 못하고 남자들에겐 '사랑한다'며 오빠에겐 '나를 책임져달라'며 매달린다. 브랜든은 이런 그를 야멸차게 다그치며 외면한다.

    브랜든은 다른 사람과 감정적·정서적 교류를 전혀 할 수 없다. 어렵게 호감을 갖게 된 직장동료와는 잠자리를 갖는 데 실패한다. 어머니가 아프다고 전화하거나 동생이 힘들다고 하소연할수록 그는 더 성행위에 몰두한다. 그의 몸부림은 쾌락보단 고통을 동반한 학대에 가깝다. 감정적으로 결핍도, 충만도 느낄 수 없으니 육체를 학대해서라도 무언가를 얻어내겠다는 집념과도 같다. 누구에게든 의존해야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씨씨도 마찬가지다. 브랜든과 씨씨 남매는 동전의 양면처럼, 정반대인 것 같아도 똑같은 존재다. 정신적인 결핍을 견디지 못해 오빠는 육체를, 동생은 감정을 소모하는 데 몰두한다. 이들의 중독은 육체를 모두 갉아먹고 영혼을 완전히 소멸시킬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씨씨가 브랜든에게 하는 말이다. 육체와 정신을 통제하지 못해 괴로워하며 몸부림을 치고, 그 몸부림에 또 수치심을 느끼는 이들을 비난하기 쉽지 않다. 따지고 보면, 이 시대에 어느 누가 결핍투성이 육체와 정신에 구속당하지 않는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척하며 바람을 피우는 브랜든의 상사보다, 지하철에서 브랜든을 유혹하는 유부녀보다 이 남매는 차라리 순수하다. 9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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