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감혜림 기자의 私事件件] 소년범들에게 "부모님 사랑합니다" 10번씩 외치게 하는 호통 판사

조선일보
  • 감혜림 기자
    입력 2013.05.11 03:05 | 수정 2013.05.12 15:04

    소년범들의 아버지 천종호 판사를 만나다

    법정에선 따뜻한 천사
    출산 앞둔 소녀범에게… 배냇저고리 선물해주고
    상습절도 일삼던 자매 위해… 10만원 든 지갑 건네줘

    부산 달동네의 빈민 출신
    단칸방서 아홉 식구 살아… 외상으로 쌀 받아오라는
    아버지의 말이 너무 싫었죠

    호통판사로 한때 유명세
    호통치는 모습 방송에… 인기 검색어 1위 올라
    소년범 6000명 재판… 나보다 많이 한 판사 없죠

    청소년회복센터까지 설립
    부모 없는 아이들 돕고싶어… 발로 뛰면서 자금 모아
    변하는 아이들 모습에 행복

    "친구 때리고 돈 뺏고. 왜 이렇게 괴롭혔어?" "이렇게 괴롭히면 친구가 힘들어할 것을 몰랐어?" "언제 철들 거야?"

    지난 3일, 부산가정법원 소년보호재판 법정. 천종호(48)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앞에 학교 폭력 가해자인 민수(16·가명)가 섰다. 천 판사의 호통이 법정에 쩌렁쩌렁 울렸다. 재판정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움찔했다.

    천 판사의 별명은 '호통 판사'다. 지난 1월 한 방송 프로그램에 그가 호통치는 모습이 나왔다. 이를 본 네티즌들이 포털 사이트에 '호통 판사'를 검색했고, 순식간에 인기 검색어 1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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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에서 소년범과 부모, 교사에게 거침없이 호통을 치는 천종호 판사가 오랜만에 법정(부산가정법원)에서 활짝 웃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처분을 내리기 며칠 전부터 밤잠을 설칩니다. 한참 동안 ‘내 자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고민을 한다”고 했다. / 남강호 기자
    최근 부산에서 천 판사를 만났다. 자그마한 키에 하얗고 말간 얼굴이 동안(童顔)이었다. 그의 또 다른 별명은 '소년 판사'다. 법조계의 '비인기 종목'인 소년보호재판(19세 미만 범죄인을 처분하는 재판)을 올해로 4년째 자청해 맡으면서 생긴 별명이다. 2010년부터 창원지법에서 소년보호재판을 한 천 판사는 지난 2월 부산가정법원으로 옮기면서 국내 최초 소년보호재판 전담 부장판사가 됐다. 그동안 만난 소년범이 6000명. 한국에서 소년보호재판을 가장 많이 한 판사다.

    최근 천 판사는 '소년범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새로 얻었다. 지난 2일 그가 소년보호재판을 담당하면서 만든 청소년회복센터가 4년 만에 10호를 돌파했기 때문이다. 부산과 경남 창원·의령 등에 있는 회복센터는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소년범 중 보살펴줄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24시간 돌봐주는 곳이다.

    센터를 만들기 위해 지인은 물론 지인의 지인까지 백방으로 만나고 다녔다는 그는 "소년범들을 보니 가정이 해체된 경우가 많더라"고 했다. "죄가 밉다고 내치기만 하면 아이들이 더 큰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커요. 엄하게 벌주되, 제대로 사회에 발붙이게 사회가 도와줘야지요. 아이들의 나쁜 짓은 결국 어른들의 책임이잖아요." 지난 2월 천 판사는 경험을 담아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나는 도시 빈민 출신"

    천 판사는 "소년보호재판관이 되기까지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 같다"고 했다. "저는 어린 시절 가난을 겪어봤고, 판사가 된 후엔 가정법원 판사로 이혼 재판을 해봤습니다. 이 경험들이 결국 저를 소년보호재판으로 이끈 것 같아요."

    그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외모만 보고 넉넉한 집에서 곱게 자랐다고 생각한다. 고향을 물어봤다. "아미동 까치고갭니더." '아미동 까치고개'는 부산의 대표적 달동네였다. 스스로 '도시 빈민 출신'이라고 했다. "7남매 중에 대학 나온 사람이 저뿐이면 말 다했지요. 비행 청소년 중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애가 정말 많아요. 바보 사정은 바보가 안다고…. 저도 어려운 시절 보냈으니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더라고요."

    천 판사는 칠남매의 넷째였다. 부모님까지 아홉 명이 단칸방에 살았다.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자였다. 한눈팔지 않고 일해도 살림은 늘 어려웠다. "'쌀 좀 외상으로 받아온나'라는 말이 참 싫었다"고 했다. 그는 초등생 시절 개근상을 딱 한 번 받아봤다. "돈이 없으니 미술 준비물을 못 챙기잖아요. 혼나기 싫어 결석을 해버렸지요."

    공부를 잘했던 그는 판사를 꿈꿨다.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문과생으로 '개천에서 용 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사법시험 합격이었다. 학교 선생님이 말렸다. "아이고야, 서울대 애들도 붙기 어려운 시험인데, 니가 우찌 붙노. 취업 잘되는 교대나 사대를 가서 빨리 돈 버는 게 안 낫긋나?"

    그래도 판사의 꿈을 버릴 수 없었다.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1984년 부산대 법대에 진학했다. 제대 후인 1994년 사법시험에 붙었다. 판사에 임용된 뒤엔 "부장판사 정도 되면 퇴직하고 변호사 개업해서 부모·형제에게 꼭 베풀어야지"라고 마음을 먹었다. '소년 판사'가 될 줄 꿈에도 몰랐다.

    2006년 부산가정법원 판사가 됐다. "이혼 재판을 하면서 가정이 해체돼 방황하는 아이들을 자주 봤어요. 형편이 어려워서 서로 안 맡겠다는 부모도 있었고…. 이혼은 세계적 현상이니 줄이기 어렵더라도 아이들만은 잘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천 판사는 2010년 창원지법 소년보호재판관으로 가면서 '길어봐야 2년 정도'라고 생각했다. "소년보호재판을 계속 하게 된 건 재판에서 만난 아이들 때문이에요. 아이들은 저마다 사연이 있더라고요. 비행(非行)의 원인을 찾아 해소해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보니 정이 들데요. 마음을 고쳐먹은 소년범이나 회복센터 분들이 '판사님, 조금 더 있어주이소'라고 말하는데 도저히 떠날 수가 없었어요."

    ◇법정에서 "시 읽어라"는 판사

    천 판사의 '처분'은 특별하다. 법정에 온 소년범들에게 무릎 꿇고 "부모님 사랑합니다"를 열 번씩 외치게 한다. 아이의 비행 원인이 부모의 무관심이면 엄마나 아빠에게 "미안하다"라고 외치게 한다. 노랫말이나 시구(詩句)를 메모했다가 읽게 하기도 한다. 출산을 앞둔 비행 청소년에게 배냇저고리를, 상습절도를 하던 자매에게는 지갑에 10만원을 넣어 선물했다.

    천 판사는 상습절도 혐의로 재판을 받은 선주(16·가명) 얘기를 꺼냈다. 알코올중독인 아버지는 선주를 자주 때렸다. 천 판사는 법정에서 아버지에게 종이를 건넸다. "소리 내어 읽으세요." 아버지가 읽어내려갔다. "그 아이가 그대를 사랑합니다… 난 사랑받고 싶어…." 한 드라마 주제곡이었던 '그 남자'를 살짝 바꾼 가사였다. 천 판사는 선주에게 "부모님 사랑합니다"를 외치게 했다. 아버지에게는 "여보, 선주야. 아빠가 잘못했다. 용서해라"를 외치게 했다. 선주 가족은 부둥켜안고 울었다. 이후 선주는 문제없이 학교를 잘 다니고, 가족은 탄탄해졌다.

    "제가요… 예전에 사람들이 왜 판사 하느냐고 물으면 무심결에 '약자들을 돕고 싶다'고 했거든요. 지키지도 못할 말을 한 것 같아서 항상 마음의 짐이었는데, 요즘은 그 약속을 조금은 지킬 수 있게 된 것 같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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