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체조 요정' 손연재가 4~5일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펼쳐진 소피아월드컵에서 개인종합 4위에 올랐다. 전종목 파이널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후 후프 결선 무대에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생애 첫 '멀티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월드컵 시리즈 3대회 연속 메달을 따내며 변함없는 상승세를 입증했다. 향후 손연재의 발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개인종합 4위 손연재, 개인종합 메달도 가능할까

러시아는 세계 리듬체조계에서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으로 꼽힌다. 탁구의 중국, 양궁의 한국과 같다. '넘을 수 없는 지존'으로 군림해왔다. 알리나 카바예바(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 예브게니아 카나예바(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올림픽 2연패), 마르가리타 마문 등 대표 에이스의 이름은 바뀌어도 대세는 바뀌지 않는다. 비너르 러시아 체조협회장이 호령하는 '러시아왕국'은 견고하다. 올림픽, 세계선수권, 월드컵에서 금-은메달을 휩쓸어왔다. 런던올림픽 후 세대교체를 선언한 러시아는 올시즌 마문, 메르쿨로바, 티토바, 스밧콥스카야 등 10대 에이스들을 돌려가며 출전시켰지만, 여전히 메달은 이들의 몫이었다. 2명의 국가쿼터가 적용되는 세계 무대에서 전세계 리듬체조 선수들이 러시아 선수들 뒤로 남은 '한자리'를 놓고 피말리는 자리다툼을 벌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듬체조 개인종합 메달권 진입장벽은 대단히 높다. 메달을 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러시아선수 2명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뜻이다. 러시아만 넘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불가리아, 벨라루스 등 러시아의 영향권에 있는 동구권 선수들 역시 우월한 체형, 탄탄한 기본기와 압도적인 기량을 두루 갖췄다.

개인종합 메달을 위해서는 소피아월드컵에서 보여줬듯이 일단 전종목에서 실수없는 무결점 연기를 펼쳐내야 한다. 20점제에선 실수 한번에 점수대가 1~2점씩 바뀐다. 손연재는 전종목에서 17점대 중후반을 기록하며 4위에 올랐다. 고른 점수로 4위에 오른 점은 칭찬할 만하지만, 개인종합 5위 이내의 선수중 손연재만 유일하게 18점대를 기록하지 못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종목별 결선에서도 후프 종목을 제외한 3종목 메달리스트들은 모두 18점대를 기록했다. '궁극의 에이스'라면 18점대 점수가 필요하다.

그나마 나은 점은 예브게니아 카나예바, 다리아 콘다코바, 다리아 드미트리예바 등 '러시아 삼총사'가 절대적인 왕좌를 차지했던 지난해에 비해, 95~97년생으로 이뤄진 신예 에이스들이 아직은 완벽하지 않다는 점이다. 직전 대회인 페사로 대회에서 러시아 선수 마리아 티토바, 다리아 스밧콥스카야를 제치고 벨라루스의 스타니우타 멜리티나가 우승했다. 이어진 소피아 대회에서 불가리아 베테랑 실비아 미테바가 2위에 올랐다. 올시즌 나가는 대회마다 1위를 휩쓴 마르가리타 마문이 이번 대회에선 볼, 곤봉 등에서 실수하며 개인종합 3위에 머물렀다. 세대교체 과정속에 '빈틈'이 있음을 의미한다. 손연재의 개인종합 메달은 냉정하게 말해 결코 쉽지 않은 미션이다. 그러나 아직 성장중인 러시아, 유럽 에이스들의 '틈새'를 완벽한 연기와 연습량으로 공략한다면 실낱같은 희망은 있다.

▶종목별 '멀티메달' 가능할까

손연재는 소피아월드컵 결선 후프 종목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리스본월드컵 볼 동메달, 페사로월드컵 리본 은메달에 이어 3대회 연속 메달의 기록을 세웠다. 곤봉을 제외한 3종목에서 다양하게 메달을 따냈다는 점이 의미있다. 손연재의 목표는 8월 열리는 세계선수권이다. 옐레나 니표르도바 러시아 코치는 런던올림픽 5위 이후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난도를 높이는 것이 절대적인 과제라고 봤다. 그래서 올시즌 손연재의 프로그램은 매우 어렵다. 연습량이 부족했던 초반 실수가 잦았던 이유도 이때문이다. 난도(D)와 실시(E), 20점제로 재편된 새로운 룰 아래서 '고난도의 연기를 완벽하게 수행할 것'을 지상과제 삼았다. 손연재는 월드컵 대회에 출전하며, 프로그램을 계속 수정해왔다. 옐레나 니표르도바 러시아 코치와 트레이너인 송재형 송피지컬 원장이 머리를 맞댔다. 손연재를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관리해온 송 원장은 손연재의 컨디션을 누구보다 잘 안다. 심적 부담이 큰 포디움에서 잘할 수 있는 동작들을 추가하고, 실수가 나오기 쉬운 동작들은 과감히 줄였다. 트레이드마크가 된 11회 멀티풀 포에테피봇은 당초 4~5회였다. '백조의 호수' 발레 프로그램에 최적화된 동작인 데다 손연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연기라는 판단 아래 과감하게 '회전수'를 늘렸다.

손연재는 결선무대 첫종목인 후프에서 동메달을 땄지만, 나머지 3종목은 예선만큼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생애 첫 '멀티메달'의 기회를 놓쳤다. '멀티메달'의 전제는 '결선 진출'이다. 모든 종목에서 고른 기량을 발휘해야 한다. 이미 3대회 연속 메달을 통해, 실수 없이 자신의 연기를 해낼 경우 대부분의 종목이 메달권이라는 점은 증명됐다. 문제는 체력이다. 소피아월드컵은 다른 대회보다 체력부담이 컸다. 통상 오전, 오후로 나누어 4종목 예선을 치르는 데 비해 세계 상위 18개국, 21명이 출전한 이번 대회는 오전부터 쉼없이 연기를 펼쳐야 했다. 전종목 결선 진출로 인해 이틀연속 4종목에서 뛰고, 구르고, 달렸다. 극도의 긴장이 이어지며, 체력과 에너지가 분산됐다. 남은 기간 동안 해야할 일이 분명해졌다. '8월의 시계'에 맞춰 숙련도, 완성도, 체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경우 종목별 멀티메달은 충분히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