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치매와 '인지저하증'

조선일보
  • 박해현 논설위원
  • 김도원
    입력 2013.05.05 23:07 | 수정 2013.05.06 17:49

    나병(癩病)은 일본에서 들어온 의학 용어였다. 우리말에선 '피부가 문드러지는 병'이라고 얕잡아 보는 '문둥병'이 널리 쓰였다. 나병을 뜻하는 영어 leprosy는 '피부가 벗겨지는 병'이라는 고대 그리스어 '레프라'에서 왔다고 한다. 1873년 노르웨이 의사 한센이 나병균을 발견한 뒤 그의 이름을 딴 한센병이 공식 의학 용어로 자리 잡았다. 우리 의학계도 오랜 병명 바꾸기 캠페인 끝에 2000년 국회에서 나병을 한센병으로 바로잡았다.

    ▶2010년 대한간질학회는 '간질(癎疾)'을 '뇌전증(腦電症)으로 바꾸며 '대한뇌전증학회'로 거듭났다. 뇌전증은 '뇌에 비정상 전기파가 생겨 경련성 발작을 일으키는 질환'이라는 뜻이다. 의사들은 간질에 찍힌 불치병의 낙인과 귀신 들린 병이라는 인상을 지우려고 병명을 과학적으로 바꿨다. 학회는 한자를 쓰는 중국과 일본의 학회에도 '뇌전증'을 함께 쓰자고 제안했다.

    만물상 일러스트

    ▶대한신경정신의학회도 '정신분열증'을 '조현병(調絃病)'으로 바꾸자는 운동에 앞장섰다. '현악기의 줄을 잘 고르지 못하는 병'을 뜻한다. 신경계에 일부 이상이 있어 행동이나 마음에 문제가 생기는 상태를 악기에 비유했다. 그간 환자와 가족들은 정신분열병이라는 병명 때문에 더 큰 고통을 받았다. 조현병은 2년 전 국회가 약사법을 개정하면서 공식 용어가 됐다.

    ▶고령화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치매(癡�)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전문가들은 "치매 발견의 가장 큰 적(敵)은 자기 자신"이라고 말한다. 기억력이 예전만 못한 일이 잦은데도 대개 나이 탓으로만 넘긴다. 40~50대 이른 나이에 치매가 생기면 당황한 나머지 병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만 한다. 치매도 불치병은 아니라고 한다. 초기에 증세를 발견해 진단받으면 약을 먹으면서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다.

    ▶치매는 '바보, 또는 멍청한 정신 상태'를 의미한다. 노망(老妄)이나 망령(妄靈) 들었다는 멸시의 뜻이 담겨 있다. 그렇다 보니 사회 인식이 나쁘고 환자와 가족이 부끄러워해 병을 숨기다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마르케스도 지난해 치매에 걸렸다고 한다. 글을 쓰느라 머리를 많이 쓴 사람도 어쩔 수 없이 걸리는 병이 치매다. 그래서 치매를 '인지(認知)저하증'이나 '노심병(老心病)'으로 바꾸자는 제안이 나왔다. 일본도 2004년 '치매'를 '인지증'으로 바꿨다. 병명부터 과학적이어야 사람들이 질병을 바로 보고 합리적으로 대처하는 자세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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