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뻔뻔한가
아론 제임스 지음|박인균 옮김
추수밭|300쪽|1만5000원
[골칫덩이의 증상]
― "내가 특전을 누리는 건 당연해" 라고 생각한다.
― 다른 사람의 불만쯤은 가볍게 무시한다.
― 걸핏하면 "내가 누군지 알아?" 라고 외친다
― 타인에겐 도덕적인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지난해 미국에서 'Assholes'란 제목으로 출간된 책이 번역돼 나왔다. 예의와 규칙 따위는 무시해 버리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안하무인을 'asshole'이라 부른다. 우리 말로는 개자식, 망나니, 철면피, 꼴통 같은 욕설에 해당하는데, 역자는 고민 끝에 '골칫덩이'라고 옮겼다. 한국어 제목은 주차관리원에 행패를 부린 중소기업 회장, 여승무원 폭행 사건 등으로 들끓는 요즘 시류에 맞춘 느낌이다.
습관적으로 새치기를 하거나, 남의 말을 끊는 이들은 걸핏하면 이렇게 외친다. "내가 누군지 알아?"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존재하는 이 무례하고 뻔뻔한 골칫덩이들에 대해 캘리포니아대 철학과 교수가 철학적 보고서를 냈다.
그는 골칫덩이를 이렇게 규정한다. ①특전을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②행동의 바탕에 뿌리 깊은 특권 의식이 자리 잡고 있으며 ③남의 불만에는 면역되어 있는 사람. 이들의 행동은 ④타인에게 지우는 물질적 비용은 크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으로 혐오감을 준다는 것이다.
이들이 뻔뻔한 이유는 '나는 사회적 관습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부도덕한 특권 의식 때문이다.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 입에서 '멍청한 개자식'이라는 욕이 나오게 한 맥아더 장군을 비롯해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 등이 차례로 호명된다. 수퍼모델 나오미 캠벨은 휴대전화로 가정부를 폭행했고, '2차 세계대전의 영웅' 조지 패튼 장군은 야전병원을 순회하던 중 부상당한 군인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며 뺨을 때렸다. '골칫덩이 유명인'을 열거하던 저자는 현 미국 대통령 오바마에 대해선 "오히려 골칫덩이와 정반대"라고 분류했다. "너무 신중하고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 치중한 나머지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지 못하고 끌려다닌다."(71쪽)
저자는 힘있는 자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골칫덩이가 될 위험이 높다고 지적한다. 골칫덩이 상사는 '내가 상사야'라는 확고한 인식에 사로잡혀 회사 밖에서도 무례한 행동을 하기 쉽다는 것. 골칫덩이 '갑'의 힘은 지위와 문화에 의해 형성된다.
골칫덩이는 사이코패스와는 다르다. 사이코패스는 악의를 품고 행동하며 '도덕 개념 없이' 태연하게 타인을 해친다. 반면 골칫덩이는 '자기 일이 아니라면' 규범 안에서 흠 잡을 데 없는 판단을 할 수 있다. 분명 '도덕 개념'을 갖고 있지만, 정작 자신과 관련된 일에만 도덕적 추론이 왜곡된다. 다른 사람은 누리지 못하는 특권을 자신이 가졌다고 생각하기 때문.
"많은 사람이 그가 만든 기계를 사용하기 때문에 자신은 장애인 구역에 주차하고 동료에게 악담을 퍼부어도 된다고 믿은" 스티브 잡스를 저자는 이런 유형으로 분류한다. 잡스의 친한 친구였던 조너선 아이브의 말. "화가 머리끝까지 날 때 그가 카타르시스에 도달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은 그래도 되는 자유와 자격이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77쪽)
왜 남자가 더 무례하고 뻔뻔한가(남자는 거침없어야 하고, 여자는 조용해야 미덕이라는 사회적 인식 때문), 미디어가 양산한 독설가들(미 케이블채널 '폭스 뉴스'의 닐 카부토, 빌 오라일리 등) 등 솔깃한 소제목이 많다. 그러나 중언부언이 너무 많다. 이들에 대한 대응책으로 "사회는 세상의 협력자들이 단결해야만 더 공정해지고 덜 부정해질 수 있다"는 교과서적 대안에선 더욱 허무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