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인류학자… 그녀가 쓴 책 한 권에 일왕은 戰犯을 면했다

조선일보
  • 표정훈 한양대 특임교수·출판평론가
입력 2013.05.04 03:01

[불멸의 저자들] 루스 베네딕트
청각장애와 조울증·동성애자였던 그녀… 관용적인 태도로 타문화 이해하려 노력
그 산물이 日 의식 연구한 '국화와 칼'

'천황 만세!'를 외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 국민들을 하나의 질문 앞에 세운다. "미국은 2차대전 처리 과정에서 왜 일왕을 전범으로 단죄하지 않았는가."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1887~1948)가 쓴 '국화와 칼'(1946)이 당시 미국의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국화와 칼'(김윤식 옮김, 을유문화사) 이전에 서구 학계에선 일본의 정신적 뿌리에 대한 학문 축적이 거의 없었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외과의사 아버지와 대학을 졸업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루스 풀턴은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어머니는 히스테리를 부렸고, 딸은 그걸 견디다 발작에 가까운 신경질을 부리곤 했다. 아버지의 이른 죽음과 어머니의 신경증이 부른 양극성 성격장애였다. 루스는 더구나 열병을 앓아 한쪽 귀의 청력을 잃었다.

루스 베네딕트 사진
/미국의회도서관 제공

루스는 1914년 코넬 의과대학의 생화학자 스탠리 베네딕트와 결혼했다. 루스 베네딕트가 된 그녀는 아이를 원했지만 남편이 반대했다. 매우 위험한 수술을 받은 후에야 임신이 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베네딕트는 모성(母性)을 실현할 수 없다는 절망감을 '나만의 노력과 창조에 따른 개성적 세계'를 향한 의욕으로 표출했다.

그 의욕은 인류학에서 펼쳐졌다. 34세 때인 1921년 컬럼비아 대학원에 입학한 루스 베네딕트는 미국 인류학계를 이끄는 프란츠 보아스 밑에서 논문 '북아메리카의 수호신 개념'(1923)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31년 조교수, 1937년에 부교수가 되었는데 압도적 숫자의 남자 정교수들은 여자가 정교수가 된다는 것을 입에 올리기조차 싫어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베네딕트는 1948년 컬럼비아대학 인류학과 정교수가 됐다.

1922년 바너드 대학 조교 시절, 베네딕트는 당시 학부생이었던 마거릿 미드(1901~1978)와 처음 만났다. 그들은 이후 25년간 동료 학자이자 동성애 관계였다. 훗날 미국 인류학회 회장을 지낸 미드는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서로의 작품을 읽고 또 읽었다. 보내오는 시(詩)에 화답하는 시를 썼고 희망과 격정을 함께 나눴다.'

베네딕트는 40대 초반이 되면서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인정하기로 했다. 젊은 화학도와 '파트너' 관계를 맺었다. 그럼에도 남편과는 이혼하지 않았다. 마거릿 미드도 영국 인류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과 결혼하면서 '양성애'의 길을 갔다. 동성애자들이 괴물 취급을 받으며 박해받던 시절 택한 세상과의 타협이었다.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인정한 베네딕트는 연구와 저술에서도 새로운 자신감을 얻게 된다. 그 성과가 '문화의 패턴'(1934)이다.

베네딕트는 1942년부터 전쟁공보청으로부터 미국의 우방국은 물론 독일이나 일본 같은 적성국, 적국 점령지 등의 문화를 연구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바로 '국화와 칼'이 탄생하게 된 계기다. 베네딕트가 일본을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화와 칼'은 놀라운 성과다. 그녀는 미국에 사는 일본인들을 면담하고 방대한 자료를 조사해 7세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일본인들의 위계질서 의식과 명예 관념 등을 분석했다. 신적(神的) 권위를 누리는 일왕을 단죄할 것인가, 아니면 점령지 일본을 통치하는 데 활용할 것인가? 베네딕트의 분석은 미국의 선택을 후자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책은 이렇게 서술한다. '천황이 입을 열자 전쟁은 끝났다. 일본인은 이제 평화의 길을 따름으로써 천황의 마음을 편안케 해드렸다. 1주일 전까지 그들은 천황의 마음을 편안케 해드리기 위해 죽창으로라도 오랑캐를 격퇴하기 위해 몸을 바치겠다고 했었다. 이와 같은 태도에는 조금도 이상한 점이 없다. 그것을 뜻밖이라고 느낀 것은 인간의 행위를 좌우하는 감정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인정할 수 없었던 서양인뿐이었다.'

청각장애와 조울증이 있는 여성 동성애자 루스 베네딕트는 신체적, 심적, 성적으로 삼중의 아웃사이더였기에 타(他)문화에 대한 수용과 관용적 태도를 견지한 것이다.

그러나 패전 직후 일본인의 표변을 '조금도 이상한 점이 없다'고 이해할 수 있다면, 오늘날 '천황 만세'를 외치는 행위도 이해해줘야 하는가? 그 이해는 인류의 보편적 양심을 거부하는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꼴 아닌가? '국화와 칼'에 또 다른 질문을 던지고 싶은 순간이다.

루스 베네딕트 표지 이미지

[루스 베네딕트를 더 알고 싶다면…]

동성애 연인이 쓴 '루스 베네딕트'
이야기 같은 베네딕트 논문 7편도

루스 베네딕트의 생애를 다룬 대표적 저술로는 학문적 동료이자 연인이었던 마거릿 미드가 쓴 '루스 베네딕트'(이종인 옮김, 연암서가)가 있다. 밀도 있는 서술로 독자의 공감을 자아낸다. 함께 실린 루스 베네딕트의 대표 논문 7편도 읽어볼 만하다. 베네딕트의 논문은 딱딱하지 않고 이야기체에 가깝다.

'문화의 패턴'(김열규 옮김, 까치)도 빼놓을 수 없다. 제리 무어의 '인류학의 거장들'(김우영 옮김, 한길사)은 루스 베네딕트를 포함한 인류학자 21명의 생애와 학문적 특징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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