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당시 민주노동당은 국회 앞에서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투쟁' 집회를 열었다. 그때 사진을 보면 '광우병 쇠고기 수입 중단! 한·미 FTA 협상 중단!' '우리 국민이 목숨을 걸고 광우병 쇠고기를 먹어야 합니까?'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보인다. 2008년 4월 말 방영된 MBC PD수첩 스튜디오의 사회자 배경에도 '목숨을 걸고 광우병 쇠고기를 먹어야 합니까'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민노당의 집회 구호를 '표절'한 것이나 다름없는 PD수첩의 방송 제목은 광우병 촛불 시위에 대해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늦어도 2006년부터 미국산 쇠고기를 '목숨을 걸고 먹어야 하는 위험 물질'로 간주한 집단이 있었다는 점, 둘째,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 여부라는 자연과학의 문제가 한·미 FTA 찬반이라는 정치적 문제와 결합되었다는 사실이다.
2005년 10월 미국은 노무현 정부의 FTA 협상 제의에 쇠고기 문제 해결을 선결 조건으로 내세웠다. 이 요구를 한국 정부가 수용하자 미국산 쇠고기 수입 여부는 순식간에 정치 공학적 의미를 갖게 됐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시키면, 한·미 FTA 체결도 무산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점은 2006년 6월 발족한 '광우병 국민 감시단'의 '죽음의 신(神) 광우병 강요하는 한·미 FTA 즉각 중단하라!'는 구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한·미 FTA 중단 프로젝트에 수의학·의학·생명과학 분야 과학자들이 뛰어들었다. 이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무책임한 행위"라며 사실을 왜곡했다. 노무현 정부는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미국 의회의 한·미 FTA 비준 지렛대로 쇠고기 수입 재개를 써먹으려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2007년 12월 대선이 끝나고 각료들이 노 전 대통령에게 쇠고기 수입 문제를 처리하자고 건의했지만 "당신들은 피도 눈물도 없느냐"며 이를 거절했다. 노 전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의 폭발성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2008년 4월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한·미 FTA 체결을 위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결정하면서 "먹기 싫으면 안 사 먹으면 되지"라고 발언했다. 그러나 2006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 주부의 70%가 이미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인정 않던 농림수산부가 5월 2일 촛불 시위가 시작되자 미국산 쇠고기의 안정성을 주장하며 '끝장 토론'을 하자고 나섰다. 그러나 정부의 공식 기관은 촛불을 끝장낼 '권위'를 두 정권 사이에서 이미 잃어버렸다. 대다수 국민에 대한 권위는 몇 년 전부터 일관되게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주장해 왔던 자칭 전문가들이 갖고 있었다.
결국 전문가-언론-시민단체-정당-국민으로 이어지는 선동의 '되먹임' 구조가 형성되고 인터넷을 통해 왜곡된 정보가 전파되면서 어마어마한 분노의 에너지가 회오리가 되어 서울 중심부를 강타하고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집단 지성'이라는 이름 아래 집단 광기가 춤을 추었다. 여름이 다 지나서야 촛불은 꺼졌다.
이명박 정부는 당시 약속했던 '촛불 시위 백서'를 발간하지 않았다. 촛불 시위라는 전대미문 사건을 겪고도 그 원인과 발생 구조를 깊이 성찰하지 않는 우리는 '선동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입력 2013.05.01.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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