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꿈쩍 않자… 北, 美에 '人質카드'로 흥정 시도

조선일보
  • 이용수 기자
    입력 2013.04.29 02:57 | 수정 2013.04.29 03:16

    [北, 한국계 미국인 반년간 억류해오다 돌연 "재판 회부하겠다" 밝혀]

    -어게인 2009 노리나
    당시 개성공단 출입 봉쇄때 美 여기자 2명 억류·협박
    결국 빌 클린턴 訪北… 이번에도 美와 양자대화 노려

    -개성공단 미련 남았나
    北, 중대조치 발표 안해… 완전 폐쇄엔 일단 유보적
    韓·美가 단호하게 대응 땐 北 추가 도발 가능성도

    개성공단 입주 기업 및 근로자들에 대한 우리 정부의 귀환 조치가 시작된 지난 27일, 북한은 전날 공언한 '중대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개성공단을 관리하는 중앙특구지도개발총국 대변인의 입을 통해 "앞으로 북남 관계를 어떤 파국으로 몰아갈지 실로 걱정"이라고만 했다.

    대신 북한은 이날 작년 11월 3일 억류한 한국계 미국인 배준호(케네스 배)씨 문제를 갑자기 꺼냈다. 재판에 회부하겠다는 것이었다. 개성공단이 폐쇄 수순에 돌입하는 등 남북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가운데 미국과 양자 대화의 물꼬를 터 위기 국면을 타개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시 한 번 2009년?

    북한 전문가 사이에선 "북한이 '어게인(again) 2009년'을 노리는 듯하다"는 말이 나온다. 북은 2009년 3월 한·미 연합 키 리졸브 연습에 반발, 개성공단 출입 봉쇄 조치(3월 9일)에 이어 북·중 접경지역을 취재하던 미국 여기자 2명을 억류(3월 17일)했었다.

    물건을 차량 지붕과 트렁크, 보닛 위에까지 잔뜩 실은 승용차
    "하나라도 더 싣고… " 개성공단서 귀환하는 차량 - 개성공단 입주 기업 및 직원들에 대한 정부의 '전원 귀환' 조치에 따라 지난 27일 물건을 차량 지붕과 트렁크, 보닛 위에까지 잔뜩 실은 승용차가 경기도 파주 도라산 출입사무소를 통과하고 있다. /로이터 뉴시스
    이후 북한은 납치 1개월여 만인 4월 24일 이들의 재판 회부 사실을 공개하는 등 끊임없이 '인질 카드'를 흔들며 미국을 압박했고, 결국 오바마 행정부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그해 8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평양에 보내야 했다.

    당시 북한은 내부적으로 "미국의 전 대통령이 장군님(김정일)에게 머리를 조아리러 왔다"며 내부 결속에 활용했다. 그해 장거리 미사일 발사(4월 5일)와 2차 핵실험(5월 25일)으로 가해진 국제사회의 제재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성과도 거뒀다.

    이날 북이 배씨 억류 6개월 만에 재판 회부 사실을 공개한 의도에 대해 동국대 김용현 교수는 "출구를 남북 관계에서 찾을 수가 없으니 북·미 관계에서 찾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서강대 김영수 교수도 "재판에 회부되면 추방 형식으로 풀려날 가능성이 크다"며 "와서 데려가라는 의미"라고 했다.

    다소 누그러진 듯한 북

    이번 대미(對美) 인질 카드는 두 달 가까이 대남·대미 위협을 계속하던 북한의 강경 분위기가 김일성 생일(15일)과 인민군 창건일(25일)을 거치며 다소 누그러지고 있는 것과 맞물린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27일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대변인은, 전날 국방위 정책국이 언급한 '중대조치'는 입에 담지 않은 채 "청와대 안주인(박근혜 대통령)이 개성공업지구마저 대결정책의 제물로 만들 심산이 아닌지 예리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개성공단 폐쇄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다.

    또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27일 부인 리설주를 대동하고 평양의 주민편의 시설인 '해당화관'을 돌아봤다.

    달라진 한·미…긴장 장기화?

    하지만 "북의 도발에 보상은 없다"는 점을 거듭 밝혀온 한·미가 북의 '반성 없는 유화 제스처'에 호응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한국 정부에서는 "잘못된 행동에 대가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을 잘못 봤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미국 조야(朝野)에선 북이 미사일·핵실험 유예를 약속한 작년 '2·29 합의'를 보름 만에 파기한 뒤 대북 온정론이 설 자리를 잃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설사 배준호씨 석방을 위해 움직인다 해도 전반적인 대북 기조 자체가 바뀌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경우 북한이 미국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2009년 미국 여기자 납치 사건 직후에도 미국이 적극 나서지 않자 장거리 미사일 발사(4월 5일)→2차 핵실험(5월 25일)→단거리 미사일 발사(〃26일)→단거리 미사일 4발 발사(7월 4일)→6자회담 종말 선언(〃18일) 등으로 위기 지수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북(8월 4일)할 때까지 쉬지 않고 '사고'를 친 것이다.

    ☞北 억류된 배준호씨는

    중국에서 북한 전문 여행사를 하던 미국 국적자 배준호(미국명·케네스 배)씨는 작년 11월 여행객들과 함께 북한 나선특별시 나진항에 들어갔다가 북한에 억류됐다. 북한은 일부 여행객의 소지품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인솔자인 배씨를 조사했다. 다른 여행객들은 모두 돌려보냈다. 미국은 평양 주재 스웨덴 대사관을 통해 배씨의 안위 문제를 다뤄왔다.

    지난 1월 방북한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과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주지사가 배씨 접견을 희망했지만 북한 당국은 불허했다. 북한은 6개월 만인 지난 27일 배씨를 재판에 넘기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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