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주의 태평로] 게으른 피해자는 2차 가해를 부른다

    입력 : 2013.04.26 23:33

    박은주 문화부장 사진
    박은주 문화부장

    사람 좋은 옆집 부인 같은 인상의 독일 메르켈 총리가 독일어를 쓴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얼마 전 알게 됐다. 그것도 아주 단호한 어조였다. "나치의 부상은 그들과 함께한 당시 독일의 엘리트들과 이를 묵인한 사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수백만 명에게 가해진 끔찍한 범죄와 고통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어떤 보상도 이런 사실을 바꿀 수 없다."

    지난 1월 30일은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한 지 8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 무렵 메르켈 총리는 이런 연설을 했다. '나치 반성'은 정치권 얘기만도 아니다. 독일에 당도한 관광객은 곳곳에서 나치의 만행을 사진으로, 영상으로 목격한다. 또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으면, 역사적 건물에 들러서 나치의 범죄상을 안내받는다. 독일 전역이 '나치 범죄 전시장'이 되는 셈이다. 총리까지 나서 명명백백한 침략 행위를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다"고 발언하는 일본과는 천양지차다.

    대체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독일은 온 국민이 양심적인 문명국이고, 일본은 양심이 퇴화한 미개의 나라일까? 그럴 리가.

    물론 여기에는 전후 미·소(美·蘇) 냉전에 따른 인위적 국제 질서 재편, 국가 단위의 근대적 윤리 의식 차이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런 논리가 눈길을 끈다. 어떤 이들은 '독일은 처음부터 철저했다'는 생각이 공상일 뿐이라 말한다. 적잖은 고위 부역자가 전후 독일에서 버젓이 노후를 누렸고, 삼베바지에 방귀 새듯 처벌을 피해간 이도 많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독일과 일본의 전후 태도를 가른 것이 '피해자의 힘'이라고 말한다. 인류 역사 속 수많은 학살 중 유난히 홀로코스트가 최악의 범죄로 '인식'되는 것은 피해자가 바로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세계 곳곳에서 돈, 권력, 문화를 쥐고 '가해자 나치'를 집요하게 공격했다.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소피의 선택'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홀로코스트 영화가 지속적으로 수상하는 것도 유대인 자금과 감독, 배우, 비평가의 연합 군단이 있어 가능했다. 유대인 학자들은 나치의 범죄 기록을 샅샅이 뒤졌고, 재력가들은 재단을 만들어 후원했다.

    안타깝지만 인류 역사에서 가해자의 동정에 기댄 피해 구제가 충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국제범죄에서 피해자에 대한 구제는 어쩔 수 없이 '힘의 논리'에 따른다. 독일이 반성을 '강제'받은 정황은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거스를 수 없는 반성 분위기가 형성됨으로써, 독일은 '제대로 반성하는 국가'라는 의도치 않은 덤을 얻은 것이다.

    물론 우리도 식민 지배 청산 노력이 있었다. '매국노' '친일파'라는 낙인은 그 어떤 낙인보다도 살 속 깊은 곳에 찍힌다. 그런데 우리가 찾아내고, 분석하고, 찌른 대상은 주로 한국인이었다. 그중에는 일회적으로 친일 행위를 하고, 훗날 독립이나 건국에 헌신한 이도 있었지만, 가차없이 '부역자'로 규정됐고 부관참시당했다.

    그러나 우리 손으로 일본 식민 전쟁에 참여한 일본 정치가와 군인, 지식인을 새로 찾아, 그 악행을 까발렸다는 소식을 최근에 들은 기억이 없다. 옆집 악당들이 우리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는데, 그들을 잡기보다 그와 친했던 우리 집 식구 족치는 데 힘을 다 썼다. 우리 땅에서 친일 청산을 제대로 마무리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일본의 책임을 묻는 일에 대한 '나태' '책임 방기'를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최근 일본의 '2차 가해'는 우리 게으름의 거울이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