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 기자의 북앤수다] '댓글(책 여백에 쓴 메모)'만 2500장… 老年의 독서가 더 즐겁다

조선일보
  • 어수웅 기자
    입력 2013.04.24 03:05 | 수정 2013.04.24 11:51

    [문학평론가 김병익]

    -노년의 책읽기
    젊었을 땐 '읽는 목적' 있었지… 출판사 사장 물러나고 나니 비로소 자유로운 독서 가능

    -전작주의 독서와 메모의 힘
    나이 드니 본 내용 금세 가물, 메모 적고 다시 워드로 옮겨 '카뮈' 34권 읽고 700장 썼다

    -일흔다섯, 전자책을 옹호하다
    교회, 면죄부 팔려 인쇄술 부흥, 그 인쇄술이 훗날 교회 공격… 종이책도 그럴 수 있지 않겠나

    어수웅 기자
    어수웅 기자
    지혜를 구해야 할 사회 원로로서 문학평론가 김병익(75)의 이름을 떠올리는 일은 익숙하다. 이분법의 세상에서 균형을 잃지 않은 지식인에 대한 신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 나온 그의 산문집 '조용한 걸음으로'(문학과지성사)를 읽으며, 조금 다른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평생 '직업'으로 책을 읽어온 평론가가 '은퇴'한다면, 어떤 독서를 선택할 것인가. 하나 더. 나이로는 아날로그 세대지만, 그는 스마트폰을 활용하고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는 예외적 70대이기도 하다. 디지털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세상, 중년 이상 세대의 디지털 문명에 대처하는 자세는 무엇이어야 할까. 1남 3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노부부만 남은, 일산 호수공원 근처의 자택을 찾았다.

    ―'노년 독서'라는 화두를 꺼냈다.

    "사실 은퇴라면 건방진 말이지. 글 쓰고 읽는 사람에게는 은퇴가 없으니까. 하지만 젊었을 때는 목적이 있었다. 청탁, 세미나, (웃으며) 원고료 때문에 쓰는 글…. 그런데 2000년 문학과지성사 사장을 물러나니, 비로소 자유로운 독서, 무목적적 독서가 가능해지더라."

    ―지금의 독서, 글쓰기가 더 즐거우신가.

    "현실적으로는 이렇다. 노인이 되니까 금방 본 내용도 잊고, 하루 이틀 지나면 제목도 잊는다. 그래도 읽다 보면 기억하고 싶은 장면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내 표현으로 '댓글'을 쓰기 시작했다. 현실적으로는 잊지 않기 위한 메모다. 어차피 노년의 세월은 무료하지 않나. 즐겁다기보다, 의미 있게 보내고 싶은 거다."

    ―'메모 독서' '전작주의 독서'를 하신다는데.

    "(일본의 노벨문학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어떤 인물, 혹은 사건에 대해 3년 동안 읽으면 그 인물이나 주제에 대해 권위를 얻든, 확실한 자기주장을 가지든 하게 된다고. 현역 때는 이 책 봤다, 저 책 봤다 산만하기 짝이 없었는데, 이렇게 집중적으로 읽으면 하나는 마스터하고 넘어가겠구나 싶었다."

    현역 은퇴 후 '전작주의'로 읽은 책이 '도스토옙스키 전집'(25권)과 '카뮈 전집'(34권) 등이다. 메모 독서는 이런 방식. 읽다가 인상적인 대목이 나오면 포스트잇을 붙이고, 하루 중 편한 시간에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으로 입력해서 USB에 저장한다. 인용문을 먼저 옮기고, 생각, 회상, 혹은 감탄을 붙여 적는 식이다. 서양에서 마지널리아(marginalia·여백에 긁적거리기)라고 명명했던 독서법이다. 그 양이 만만치 않다. 도스토옙스키는 200자 원고지 400장, 카뮈는 700장가량, 다른 책까지 대략 2500장을 '메모'했다. 현길언 전 한양대 교수가 발행인으로 있는 계간지 '본질과 현상'에 연재했던, 바로 그 글이다.

    문학평론가 김병익
    책 첫장에 모아 놓은 포스트잇. 인상적인 구절이 나올 때마다 하나씩 붙인 뒤 메모를 시작한다. 영원한 현역 김병익의‘노년 독서’다. /이진한 기자
    ―이 '메모 독서'의 의의는.

    "프랑스 문화사를 다룬 '책의 미래'(로버트 단턴)에 보면, 베이컨·밀튼·로크·스피노자 등도 다 이런 마지널리안이었다고 한다. 비망록이란 게 그런 거다. 위대한 사상가들의 내면 이해에 좋은 자료가 된다. 내가 그런 위대한 사상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일로만 미루고 굳이 엄두 못 낼 이유가 있을까. 거창한 야심이 아니라 겸손한 '마지널리안'이 되는 소담한 책읽기. 세상에 대한 새로운 반성과 이해, 회상과 그 소회를 적어보는 일이다. 실용성은 적지만, 각자 자유로운 사유를 할 수 있고,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화제를 옮겼다. 그는 최근에 쓴 에세이에서 "전자책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갖는 것은, 지적 태만 혹은 위선이 아닐까"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의외다. 지적 태만과 위선?

    "인쇄술이라는 새로운 발명으로 엄청난 성과를 누렸으면서도, 전자책이라는 새 발명을 부정적으로 보는 건 모순 아닌가. 새 기술은 늘 의외의 변수를 가져온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도 그렇다. 타락한 가톨릭 교회가 처음에는 구텐베르크를 지원하지 않았는가. 팔아먹을 면죄부의 대량생산이 필요했으니까. 면죄부 후에는 이 인쇄술로 성경을 찍어냈다. 농부들이 신부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하나님 말씀을 대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교회 불신이 일어났다. 루터의 종교개혁 선언문 인쇄도 그 덕이다. 가톨릭 호교(護敎)로 시작한 인쇄술이, 가톨릭을 깨는 결과를 빚은 것이다. 긴 시간으로 볼 때, 나는 종이책도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다른 방식의 공존도 가능할 테고. 자동차와 자전거의 관계, TV와 라디오의 공존을 보라."

    지난 연말 스마트폰을 구입했다는 이 70대. 그는 "내 또래 중에는 나도 개명(開明)한 축이지만, 그래 봤자 젊은 세대하고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미숙한 건 당연한 것 아니냐"며 웃었다. 그러고는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쓴 영국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를 인용했다. "첫째,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존재한 모든 것은 우리에게 일상적이다. 둘째, 출생에서부터 30세 이전에 발명된 것은 놀랍도록 흥분되고 창의적이며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행운이다. 셋째, 30세 이후에 발명된 것은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것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문명의 종말을 뜻한다. 그것이 약 10년 이상 존재한다면 천천히 친해질 수는 있다."

    그의 여유 있는 '노년 독서'와 '디지털 분투기'를 들으며,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가 제시한 개념인 '만년의 양식(late style)'이 떠올랐다. 사이드는 이렇게 말했다. "만년(晩年)이라는 것은 초월하기도 어렵고, 극복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것은 오로지 심화시킬 뿐이다." 나이에 순응하면서, 스스로 깊어지는 일. 일산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 자유로의 하늘이 노을로 짙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