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백악관에서 케네디 대통령이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맞았다. 그는 왼손을 양복 윗도리 주머니에 넣고서 박 의장과 악수했다. 박 의장과 담소하면서는 다리를 꼬고 흔들의자에 앉아 몸을 흔들었다. 다만 양복 단추를 연 박 의장에 비해 케네디는 내내 단추를 둘 다 단정히 채웠다. 동갑 한국 지도자에게 나름 예를 갖추려 한 흔적이다.
▶62년 독일에 부임한 미국 대사가 독일 대통령에게 한 손으로 신임장을 건넸다.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찌른 채였다. 독일 신문이 가십으로 다루며 "아무리 미국식이라 해도 보기가 좋지 않다"고 했다. 독일인들 사이에도 잠깐 논란이 일었지만 큰 흠은 잡지 않았다. "우리는 외교관 학교에서 매너와 격식을 가르치는 직업 외교관제다. 반면 미국은 대사 자리가 개방돼 있어서 그럴 것이다." 그쯤으로 이해하고 넘어갔다.
▶2년 전 서울에 온 스타인버그 미 국무부 부장관이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유명환 외교부 장관과 악수했다. 양복 단추도 푼 상태였다. 기자회견장에선 줄곧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질문에 답했다. 미 대사관은 "관료 출신이 아니어서 캐주얼한 스타일"이라고 했다. 일본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아이들이 주머니 달린 바지를 못 입게 한다. 미군 복장·용모 규정은 물건 넣고 꺼낼 때 말고는 제복 호주머니에 손 넣는 것을 금지한다. 터키 외교관 매뉴얼엔 다른 사람과 말할 때 손을 허리에 얹거나 주머니에 넣지 말라고 돼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찌른 채 박근혜 대통령과 악수하는 사진이 어제 신문에 실렸다. "무례하다"와 "문화 차이"라는 반응이 엇갈린다. 게이츠의 왼손은 이명박 대통령, 메르켈 독일 총리, 사르코지·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 악수할 때도 주머니에 숨어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시진핑 주석을 만났을 때처럼 왼손이 나와 있는 사진은 몇 안 된다. 게이츠의 습관이 원래 그런 모양이다.
▶게이츠가 외교관이 아닌 만큼 반듯한 매너를 요구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국가 지도자를 방문할 땐 그 나라 사람의 정서와 예의를 생각하는 게 옳은 일이다. 1792년 영국 사절단이 청나라와 통상을 트려고 건륭제를 찾아갔다. 특사 매카트니 백작은 황제 앞에 세 번 무릎 꿇고 아홉 번 머리 조아리라는 요구를 거절했다. 한쪽 무릎을 꿇는 영국식 예만 갖췄다. 그로부터 220년이 흘렀어도 동서양 문화는 여전히 어긋나고 삐걱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