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당연시해왔던 표절… 대학이 나서 非정상 바로 잡아야"

    입력 : 2013.04.23 03:09

    [죄의식 없는 '표절 대한민국'] [10·끝] 전문가들의 해법

    -표절의 기준 정해야
    "자기 말로 풀어서 써도 원저자 인용 없으면 표절
    전문가들이 위원회 만들어 판단해야 할 문제"

    -대학원 설립 목적 명확히
    "美 대학 12%만 박사과정, 개설한국 대학은 80%가 운영
    명함용 학위로 표절 양산… 특수대학원 논문요구 재고해야"

    -표절 방지하려면
    "인문사회계 교수 업적 평가, 양적인 논문 평가도 문제
    우리 학생들, 남의 생각 아닌 자기 생각 키우는 훈련해야"

    죄의식 없이 자행되는 학계의 표절 문제가 "심각한 상태"라며 많은 교수가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대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본지는 지난 한 달 동안 유명인의 학위논문 표절을 시작으로 연예계, 예술계, 교육계, 고위 공직계 등 사회 곳곳의 논문 표절 문제를 들여다봤다.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표절 원인과 실태, 해결 방안을 논하는 대담을 마련했다. 대담자로 서울대의 연구 윤리 관련 교육을 담당하는 이준웅 교수(언론정보), 연세대 윤리경영담당관 백윤수 교수(기계공학), 표절 관련 전문가 명지대 강규형 교수(기록대학원), 한국연구재단 김덕규 학술진흥본부장이 참석했다.

    왼쪽부터 명지대 기록대학원 강규형 교수, 한국연구재단 김덕규 학술진흥본부장(경북대 교수), 연세대 윤리경영담당관 백윤수 교수,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이준웅 교수
    22일 본사에서 열린 대담에 참석한 학계 관계자들은“이제는 대학이 표절 근절을 위해 나서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왼쪽부터 명지대 기록대학원 강규형 교수, 한국연구재단 김덕규 학술진흥본부장(경북대 교수), 연세대 윤리경영담당관 백윤수 교수,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이준웅 교수. (가나다순) /허영한 기자
    [학계 "올 것이 왔다"]

    ―논문 표절 문제가 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학계의 반응은 어떤가?

    강규형 "첫째는 올 게 왔다는 반응이고, 둘째는 '원래 다 그런 걸 이렇게까지 하느냐'라는 반응이다. 나는 첫째 의견에 동의한다. 비정상인 상황에 우리가 익숙해져 있었다. 정상으로 돌려놓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

    이준웅 "김미경씨 같은 유명인, 고위 공직자들의 표절 사례도 화제가 됐다. 이 문제를 학자들이 모여 합의하고, 합의기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 정도로 엉망인 줄 몰랐다. 토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김덕규 "최근 표절이 화제가 되고 난 이후에 여러 전문가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표절은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단어라고 하더라. 운동경기라면 반칙일 텐데, 그 반칙에 어떤 벌칙을 주느냐 하는 판단은 전문가 집단에 맡겨야 할 것 같다. 인문사회·이공계, 또 그 내부에서도 각기 다른 기준을 각 단체에서 만들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백윤수 "한 가지 크게 느낀 건 교수마다 표절에 대한 정의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학문 간이나 시간적 측면에서도 서로 인지하는 표절의 의미가 달랐다. 학계 일원으로서 뭔가 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는 것 같다."

    ["특수대학원, 논문 요구 말아야"]

    ―어디까지가 표절인지 기준을 정하기도 어렵다. 기준 확보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준웅 "표절은 도둑질보다는 거짓말이나 사기에 가깝다. 남이 쓴 것의 이득을 절취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 문제이고 법익 침해 문제이기도 하다. 본질적으로는 윤리 문제이기도 하다. 각 분야에서 그 사건을 자주 본 전문가들이 위원회를 만들어 판단해야 할 문제이다."

    ―표절 논문을 양산한다는 특수대학원 문제는 어떻게 보나?

    강규형 "우리나라만큼 특수대학원이 많은 나라는 없다. 학벌 세탁용이고. 명함용 학위를 사는 곳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0년 사이 학부생이 31만8000명에서 23만9000명으로 줄었는데, 박사 입학생은 2배로 늘었다. 미국에는 2189개 대학 중 12.3%만 박사과정이 개설돼 있지만 우리나라는 80.6%가 박사과정을 운영한다."

    김덕규 "학자를 길러내는 것인지, 그 분야 전문가를 길러내는 것인지, 대학원 설립 목적을 명확히 해야 한다. 특수대학원은 학자를 길러내기 위한 곳이 아니다. 왜 특수대학원 학생에게 논문을 요구하는지 근본적으로 재고해 봐야 한다."

    ―특수대학원이 왜 논문을 요구하나?

    이준웅 "학술 세계에서 논문의 양적지표 말고는 성과를 평가할 별도 기준이 없다. 학위를 주려면 뭔가 평가를 해야 하는데, 특수대학원 사람들을 판단할 근거가 없기 때문에 물리적 근거로서 논문을 쓰는 것이다. 그러니 특수대학원에서도 차라리 보기 편하게 논문을 쓰라고 한다."

    백윤수 "특수대학원은 근본적으로 전문성을 강화하고 자기 전문 분야와 연계된 관심을 충족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닌가. 특수대학원 학생들이 쓴 논문은 제출 전 학회에 발표해 대놓고 검증받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면 좀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중복 단어 수 기준은 미봉책"]

    ―표절 기준 통일 적용 가능하나?

    이준웅 "단어 중복 여부로 표절을 판정하는 것은 간단한 방법이지만 올바른 판정 기준이 될 수 없다. 저자들이 풀어쓴다 하더라도 원(原)저자의 생각을 인용했음을 표시하지 않으면 표절이다. 학계의 절대 진리다."

    김덕규 "외국에서 여섯 단어가 겹치는 것을 표절로 규정하는 것은 그렇게 우연하게 겹칠 확률이 정말 낮기 때문이다. 하버드 대학의 예가 참고할 만하다. 매년 온갖 표절 사례를 엮은 책을 발행하는데, 연구 기관들의 이런 노력이 필요하다. 학회나 연구 기관별로 이런 경우는 표절이다 저런 경우는 아니라는 식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이준웅 "기계적 기준이 양날의 칼로 돌아올 수 있음도 생각해야 한다. 소프트웨어로 표절 판정을 하면, 오히려 그걸 이용해 표절을 교묘히 피해 나갈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문화가 없는 상황에서 표절을 외적으로만 규제하는 것도 문제라는 것이다."

    ―표절 사실이 드러나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강규형 "교수들은 상당히 엄격하게, 연예인·정치인은 학위 취소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우리나라는 박사 학위를 주는 대학이 너무 많다. 단적으로 미국 오하이오주(州)는 수십개 대학에 역사학과가 있지만 역사학 박사 학위를 주는 대학은 7곳밖에 없었다. 그나마 지금은 2곳으로 줄었다."

    이준웅 "표절은 심각한 연구 윤리 위반이고, 이것에 기반을 두고 명성을 쌓는 것도 비윤리적인 일이라는 인식이 전반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더 많은 사례가 쌓이기 시작하면 자정 작용이 이뤄질 것이다."

    백윤수 "사안별로 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자기 표절' 같은 경우 1980~90년대만 해도 없던 얘기다. 2000년대에 와서 그 잣대를 가지고 과거 사람들에게 들이대니까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각 학문 분야의 당시대적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대담자들이 말하는 표절 방지 대책
    ["양적인 논문 평가가 문제"]

    ―양적인 논문 평가가 문제라는 지적이 있는데?

    김덕규 "인문사회계는 교수의 업적 평가를 저서가 아닌 논문으로 하는 게 문제다. 미국과 일본은 저서로 평가하는데 우리나라는 오히려 저서를 무시하고 있다."

    이준웅 "51페이지가 넘으면 법적으로 책이다. 51페이지든 500페이지든 필생의 역작과 논문 한 편을 같은 성과로 치는 게 문제다."

    강규형 "양적 평가로 생긴 좋은 현상도 있다. 평생 논문 3편을 쓰고, 은퇴 20년 전부터는 논문 1편도 안 쓰고 계속 학계에 남은 분이 있다. 최소한 그런 교수님들은 이제 사라지고 있다."

    ["학계, 온정주의로 가면 안돼"]

    ―표절 방지를 위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백윤수 "표절 문제는 우리 산업 발전사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60~70년대 우리는 외국 도면을 베껴서 그것으로 먹고살았다. 그다음은 우리 것을 만들어 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우리 학생들은 '남의 생각이 아닌 네 생각이 뭐냐'는 부분을 훈련받지 않았는데 이제라도 해야 한다."

    김덕규 "바둑을 잘 두는 이세돌 같은 친구가 학위가 왜 필요하나? 김연아가 대학 간 건 웃기는 일이다. 학위라는 잣대 하나로만 평가하는 우리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백윤수 "표절 가지고 뭐라고 하면 오히려 그쪽 학문 영역 사람들이 '뭐 이런 걸 문제 삼느냐'면서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하는 상황을 만들곤 했다. 온정주의로 가면 안 된다. 이제는 이런 면이 점차 없어지고 많이 좋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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