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26~27일로 예정됐던 일본 방문을 취소했다고 외교부가 22일 밝혔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일 새 정부 출범 후 새로운 한·일 관계를 모색하고자 윤 장관의 방일(訪日)을 추진했지만 최근 아소 다로 부총리 등의 야스쿠니 참배로 생산적 논의가 어렵게 됐다"고 했다. 지난 20~21일 아소 부총리 등 일본 각료 3명은 지난해 12월 아베 내각 출범 후 처음으로 2차대전 전범(戰犯)들이 합사(合祀)돼 있는 야스쿠니를 참배했다. 아베 총리는 21일 야스쿠니를 직접 참배하지는 않고 '내각 총리대신' 명의로 공물(供物·신령 등에게 바치는 물건)을 보냈다.

5월 중 열릴 것으로 예상됐던 한·중·일 3국 정상회의도 무산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이 최근 5월 25~26일 서울에서 회담 개최를 제안하자 일본은 즉각 수락했지만 중국이 난색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취임한 리커창 중국 총리가 첫 정상 외교 무대에서 아베 일본 총리를 만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5월 초 미국 방문에 이어 5월 중 방중(訪中)을 추진하고 있지만 일본 방문에 대해선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한·중·일 3국 모두 새 정부가 출범한 상황에서 정상·외무 회담을 잇달아 취소·연기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한국과 중국이 외교 무대에서 일본과 얼굴을 맞대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정상회담 또는 외무장관 회담에서 '미래 지향적 관계를 향해 함께 노력한다'고 합의해도 곧바로 과거사 왜곡 교과서 채택과 독도 영유권 주장, 야스쿠니 참배처럼 상대 국가를 자극하는 행동이 터져나오는 바람에 한국 정부 내부 논의 과정에서 한·일 관계 개선이란 말을 섣불리 꺼내기도 힘들다고 한다.

지난해 말 아베 내각 출범 후 일본은 모처럼 정치·경제적으로 활기를 되찾았고, 아베 총리 지지율은 80%에 육박한다. 그러나 한국·중국 등 인접 국가의 일본에 대한 평가와 반응은 일본 내부 분위기와 딴판으로 악화돼 가고 있다. 역대 일본 정권 중 가장 퇴행적인 아베 정권의 역사 문제에 대한 인식과 행태가 한국 정부로 하여금 일본과 협력하는 관계 내실화(內實化)를 망설이게 만들고 있다. 일본의 정치 리더들은 야스쿠니 참배를 통해 평화헌법 개정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려 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주변국의 의구심은 커지고 외교적 고립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일본이 스스로 선택한 외교적 고립 심화가 한국·중국·일본·미국이 함께 엮어내는 동북아 안정과 평화의 다자(多者) 방정식 해법(解法) 찾기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국의 장기적 국가 전략 수립에서 '일본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하는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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