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이야기 말고 네 이야기를 해!" 키득거리며 읽는 理性의 무력함

조선일보
  • 어수웅 기자
    입력 2013.04.20 03:13

    김 박사는 누구인가

    김 박사는 누구인가

    이기호 소설집|문학과지성사 | 404쪽|1만3000원

    시치미와 능청으로 소설가의 존재 의미를 경쾌하게 입증해 온 작가 이기호(41)의 세 번째 단편집. 8편의 중·단편을 모았다. 표제작 '김 박사는 누구인가'는 Q & A라는 형식도 재미있지만, 정신분석학으로 대표되는 도구로서의 이성이 실제 우리의 삶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우선 키득거리며 읽게 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여성지의 고민상담 코너 같은 이 단편은 사범대를 졸업하고 임용고시 재수 중인 스물네 살 최소연(가명)이 '고민녀'다. 그녀의 고민은 자신에게만 들리는 이상한 목소리. 곧 엄청난 욕설을 하게 될 거라는 일종의 예언이다. 시도 때도 없고, 상대방도 가리지 않는다. 고시원 총무에게, 분식점 아르바이트생에게, 심지어 학원 교재 표지에 적힌 저자 이름에도. '김 박사님'은 이제 화려한 전문 용어로 상담을 시작한다. 단순히 재수생의 스트레스만은 아니라는 것. '욕설의 기원'이 분명히 과거에 있을 거라는 것. 우리의 소연양과 김 박사님의 Q & A는 무한궤도에 올라탄다.

    Q: 맞아, 잊고 있었어요. 뿌리를 캐다 보니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가 검은 수첩에 적은 이름을 불러 가며 욕을 했었죠. '나쁜 년, 개 같은 년, 육시(戮屍)헐 년….'

    A: 자신의 상처와 직면하세요. 어머니와 대면하세요.

    Q: 털어놨어요. 어머니 허벅지에 얼굴을 묻고 울었어요. 처음에는 치유받는 느낌이었죠.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어요. '개 같은 년.'

    A: 어머니도 상처받은 영혼입니다. 이제는 어머니를 정면으로 바라볼 시점이네요.

    Q: 어머니의 고민을 알기 위해 아버지를 찾았어요. 내 앞에서는 단 한 번도 싸운 적 없는 부부였는데. 고민을 얘기했을 때 아버지는 갑자기 무서울 정도로 무표정해졌죠. 주말에 집에 갔더니 아버지의 짐이 모두 빠져 있더군요.

    A: 이건 당신의 책임이 아닙니다. 죄책감부터 덜어내세요.

    Q: 아니요. 이제 내가 듣고 싶은 얘기는 김 박사님의 이야기예요. 어디에 배치해도 변하지 않는 당신만의 이야기.

    A:(……)

    Q: 남의 이야기를 하지 말고, 네 이야기를 하라고! 김 박사, 이 개새끼야!
    R>조금 길어 보이는 이 요약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 텍스트가 재담꾼으로서의 작가 특징은 물론, 단순 재담을 넘어 '이야기'의 기원과 운명을 탐색하는 등단 14년차 작가의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자신과 타인의 관계, 웃음의 밀도와 농도, 해학과 애환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기호 박사'의 세 번째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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