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붕=멘털 붕괴, 멘작=멘털 작살….'
대구 동호동 경북외국어대의 한 교수 연구실 화이트보드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방 주인인 A 교수가 허탈하게 웃었다.
"얼마 전 학생들한테 '젊은 사람들 쓰는 말을 못 알아듣겠다'고 했더니 '우리가 알려 드리겠다'며 적어준 거예요. 지금 딱 저 심정입니다."
교육부는 17일 이 학교가 '자진 폐교'를 신청했다고 발표했다. 학생들은 평소처럼 수업 마치고 스마트폰 켜다가, 학부모들은 TV 켜놓고 저녁밥 짓거나 직장에서 인터넷 보다가 이 사실을 알았다. 신문·방송을 미처 못 본 사람들은 다음 날 오전 7시 58분 이영상(73) 총장이 돌린 단체 문자를 보고 알았다. 한 학부모는 "전날까지도 멀쩡하게 학교 행사에 참석했는데…. 학교에 뒤통수를 맞은 느낌, 그것도 쇠망치로 맞은 느낌"이라고 했다.
경북외대는 대구 외곽에 자리 잡은 한 동짜리 미니 대학이다. 학부는 2개, 교수는 17명, 재학생은 329명, 휴학생은 167명이다. 정원은 학년당 150명씩 총 600명이지만, 2005년 개교 이래 한 번도 그 숫자를 꽉 채운 일이 없다. B 교수는 "학생 수를 채우려고 나만 해도 지난 입시 철에 인근 고교 30~40곳을 돌았다"고 했다.
18일 경북외대는 조용했다. 대자보도, 삭발식도, 출정가도 없었다. 교직원들은 정상 출근했고, 교수들은 구내식당에 식판을 들고 줄 섰다. 강의실에선 학생들이 묵묵히 교재를 들여다보고 운동장에선 야구부원들이 심드렁하게 방망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수면 밑에선 혼란이 막 분노로 바뀌고 있었다.
"저는 마흔 넘어 대학 들어왔어요. 가게 문 닫고 저녁 6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 주경야독했어요. 제 처지도 황당하지만 자식 같은 동기들은 더 안쓰러워요. 정부도 무책임해요. 애초에 인가 내주지 말든가, 내줬으면 관리 감독을 잘해야죠." (43세 여학생 C씨)
"작년부터 '학자금 대출 제한 대학'으로 지정돼 힘들었지만 그래도 학교가 없어질 줄은 몰랐죠. 부모님에게 이 상황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21세 남학생 D씨)
어쩌다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까? 교수들은 "한마디로 교육을 하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이 돈 있다고 대학을 세우고 가족끼리 마치 왕국처럼 운영한 결과"라고 했다.
이 학교 설립자(81)는 과거 다른 전문대를 운영하다가 부실과 비리가 들통나 관선 이사에게 밀려났다. 이후 경북외대를 세우고 아내는 총장, 장남은 대학원장, 차남은 부총장, 며느리는 이사로 앉혔다.
설립자 일가는 2010년 "재정을 개선하라"는 교육부 권고를 받고 "3년간 35억원을 추가로 출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6억원만 냈다. 학교 관계자는 "설립자 일가는 '땅이 안 팔려서 돈을 더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다'고 하는데, 시가보다 비싸게 땅을 팔려고 하니 누가 사겠느냐"고 했다.
작년 11월에는 설립자 일가가 수년간 학교 돈을 거액 횡령한 혐의를 잡고 검찰이 내사를 시작했다. 한 교수는 "설립자 일가가 올 초 보직 교수들과 핵심 교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교육부가 한 번 더 감사 나오기 전에 차라리 자진 폐교하는 게 낫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 학교 교수들은 작년 5월부터 월급이 나오다 말다 하는 생활을 계속해왔다.
이에 대해 이영상 총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작년에 '학교를 팔라'는 제안도 받았지만, 상대방이 100억원 준다고 했다가 50억원 준다고 했다가 자꾸 말을 바꿨다"면서 "되도록 학교를 유지하려 했으나 더 이상은 재정적으로 버티기가 힘든 상황이라 자진폐교키로 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