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현 베이징 특파원

지난해 베이징대에서 연수할 때 중국 교수에게 "중국인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역사 전공인 그 교수는 생각할 시간을 하루만 달라고 하더니 조심스럽게 "성(城)을 쌓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중국이 자랑하는 만리장성부터 북방 유목민의 침입을 막기 위한 조처였다는 것이다. 중국에 살다 보면 '○○성(城)'이란 이름을 가진 아파트 단지를 자주 보게 된다. 이름이 '성'으로 끝나지 않아도 중국의 아파트 단지는 성처럼 사방을 담으로 둘러놓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급 단지일수록 담이 높다. 캠퍼스 면적이 273만㎡인 베이징대도 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외부인이 들어가려면 신분증 검사를 받아야 한다.

물론 이런 담의 높이가 외부 침입을 물리적으로 막을 수 있을 만큼 높지는 않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다. 베이징대 교수는 "중국인은 자신의 성을 쌓고 그 안에 있어야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담의 심리적 효과가 강하다는 얘기다. 중국인이 중시하는 '관시(關係·인적 네트워크)'도 결국은 "마음속의 성"이라고 교수는 분석했다. 친척이든 친구든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인간관계의 성을 쌓아야 안도감을 느낀다는 설명이다. 반면 중국인은 자신과 관계가 없는 사람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교통사고 피해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어도 선뜻 나서 도와주는 사람이 드물다. 지난 5일 지린성 창춘(長春)의 한 시장에선 70대 노인이 쓰러졌는데도 178명이 본체만체 그냥 지나가는 CCTV 동영상이 공개돼 논란을 빚었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중국인은 오랫동안 북한을 자기들의 성 안에 있는 존재로 여겼다. 북한을 도와 성 밖에 있는 한국·미국과 대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고의 부스러기는 6·25 참전자 등 일부 중국인에게 아직 남아 있다. 그러나 대다수 중국인은 빠른 속도로 북한을 성 밖으로 내치고 있다. 북·중 간 물리적 담은 이미 완공된 상태다. 현재 국경에는 어른 키보다 높은 철조망이 촘촘하게 세워졌을 뿐 아니라 감시 카메라까지 달렸다.

특히 3차 핵실험 이후 북한과 김정은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글이 중국 인터넷에 쏟아지고 있다. 북·중 국경의 중국인 77%가 북한 핵실험 이후 거주지 환경오염을 우려한다는 관영 매체(환구시보)의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부주석 시절이던 2010년 10월 "6·25는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연설한 것은 당시 청중이 6·25 참전자였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그가 친북(親北) 성향인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시 주석은 최근 북한을 향해 "자기 잇속을 위해 지역과 세계를 혼란에 빠뜨려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권력 서열 2위 리커창 총리도 "한반도 도발은 제 발등을 찍는 일"이라고 했다.

중국이 대북 정책을 갑자기 선회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미국과 '신흥 대국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한 단계에서 북한을 포기하는 건 이르다는 주장이 관영 매체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많은 중국인은 북·중 사이에 담이 있다고 느낀다. 성 밖의 존재에 냉정한 것도 중국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