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살이 20년 이왈종 "이번 작품은 미술관"

입력 2013.04.16 03:23

[내달 31일 '왈종미술관 '개관]

-'왈종 스타일'로 지었다
건축가에 백자 찻잔 보여주며 "이렇게 만들어 달라" 주문
-미술관 앞, 커피숍은 왜?
미술관 수익 내기위해 오픈… 돈 빌리느니 욕먹는 게 낫다

건물은 조선백자 다완(茶碗)을 닮았다. 꼭대기에서 한껏 입을 벌렸다가, 아래로 내려오면서 서서히 좁아진다. 인근 정방폭포의 물소리가, 정갈한 찻물처럼 건물에 담긴다. 건물 앞 텃밭엔 영국 조각가 앤터니 곰리의 강철 자소상(自塑像·자신을 모델로 한 조각)이 섰다.

"완전히 '내 스타일'로 지었어요. 부드럽게, 날카로운 선은 다 빼 버리고 둥글게."

화가 이왈종(68)이 서귀포시 동홍동 정방폭포 맞은편에 '왈종 미술관'을 연다. 개관일은 5월 31일. 지난해 2월 착공해 최근 완공했다. 높이 15m, 전체 넓이 300평(약 992㎡) 규모의 3층 건물이다. 1층엔 어린이 미술 교육실, 도예실, 수장고가 들어섰다. 2층 상설전시실엔 이왈종의 대표작 30여점이 걸렸고, 3층엔 작업실과 손님 접대용 다실(茶室)이 자리했다.

건물의 하이라이트는 옥상이다. 섶섬과 문섬이 나란히 앉은 서귀포 앞바다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살림집 겸 작업실을 지으려 했는데 문화재보호지역이라 허가가 안 났어요. 미술관을 짓는다면 건물을 올릴 수 있다고 해서 결심했지요. 서귀포의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자고."

작가가 사재(私財)를 털어 미술관을 짓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직원 월급도 감당 못해 허덕이는 사립 미술관이 허다하다. 과연 제대로 운영이 될까. "걱정 안 합니다. 내가 못하면 다른 사람이 가져가면 되지요. 일단 만드는 게 중요한 겁니다." 이왈종 특유의 낙천적인 어투다. 그림 그리고, 조각하고, 도자기까지 굽는 이왈종은 미술관도 '거대한 설치미술' '작업의 확장'쯤으로 보는 듯했다. "설치미술은 한두 달 만에 철거하잖아요. 이건 최소한 10년은 가지 않겠어요? 나는 일 저지를 때 5년 이상 안 내다봐요."

설계는 스위스 건축가 다비드 머큘로(Macullo·48)가 했다. "머큘로에게 백자 찻잔을 보여주며 '이렇게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건물 축소 모형도 내가 도자기로 구워줬죠. 전통 찻잔에 우리 미감(美感)이 녹아 있는데, 굳이 다른 형태를 빌려올 필요가 없잖아요."

넉넉한 성격이지만, 건물을 짓다 보니 잔소리가 많아졌다. 외형부터 계단 위치까지 설계에 일일이 간여했다. "우리나라 집은 향(向)이 중요하잖아요. 서양 건축가에게 풍수(風水) 개념을 이해시키는 게 쉽지 않았어요."

미술관 짓는 동안, 제주 도내 공사가 3000건이 진행 중이었다. 사람이 없었다. 외장할 땐 어려워서 못 하겠다며 가 버린 일꾼도 있었다. 이왈종은 "두 번 하라면 못 할 것"이라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미술관이 완공됐을 때, 이왈종은 1층 입구 바닥에 생활신조를 큼지막하게 썼다. '一切唯心造 心外無法(일체유심조 심외무법·모든 게 마음에 달려 있고, 마음이 곧 법이다).' 그 옆에 물고기, 새, 꽃을 그리고 서명했다. 미술관도 '작품'이라는 선언이다.

미술관 앞 텃밭에 세운 앤터니 곰리 자소상의 부끄러운 부분을 살짝 가리고 선 이왈종. 성격이 부드럽기로 소문난 그이지만“미술관 짓는 동안 잔소리꾼이 다 됐다”며“두 번은 못 하겠다”고 했다. /서귀포=이종현 객원기자
미술관 입구엔 아트숍을 겸한 커피숍을 세웠다. 운영은 부인이 한다. 이왈종은 "커피숍 문 연 지 한 달 됐는데 정방폭포 관람객 덕에 적자는 안 본다. 폭포와 섬들이 미술관을 먹여 살릴 것"이라 했다. 예술가가 '장사'한다고 비난을 받을지도 모르는데, 태연했다. "돈 벌려고 아트숍 하는 거 맞아요. 최소한의 미술관 운영비는 나와야 하니까.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하면서 돈 빌리는 것보다 욕먹는 게 낫지요."

이왈종은 20여 년간 한결같이 꽃 피고, 새 울며, 지붕 밑에서 남녀가 복닥대는 서귀포 풍경을 그려왔다. 앞으로 그의 그림엔 '미술관'이 새로운 소재로 등장할 것 같다. 미술관 개관전으로는 다문화가정 돕기 판화전을 연다. (064)763-3600

☞이왈종은…

1945년 경기도 화성 출신. 서라벌예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1979년부터 추계예대 교수로 재직했다. 1990년 그림에만 몰두하겠다며 서귀포로 내려갔다. 교수직도 내놓았다. 이후 서귀포 생활을 낙천적 터치로 그린 ‘제주생활의 중도(中道)’ 연작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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