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벌의 불공정 거래 제재, 방법과 시기 다듬어 시행해야

조선일보
입력 2013.04.15 23:29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 7명이 국내 62개 재벌 그룹을 대상으로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 같은 내부 거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재벌 계열사끼리 불공정할 정도로 유리한 가격에 일감을 몰아주는 경우에 한해 일감을 준 회사에 매출액의 2~5%씩 과징금을 물려왔다. 이걸 앞으로는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감을 준 회사와 받은 회사 모두에 과징금을 5%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내부 거래가 허용되는 예외적 경우는 계열사 말고는 부품을 만들고 있는 다른 회사가 없거나, 계열사 밖에서 납품받으면 값이 비쌀 때, 경쟁 입찰에서 계열사의 납품 조건이 가장 좋을 때로 한정했다.

재벌 총수가 가족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거나 알짜 사업을 떼어주는 방식으로 편법 증여·상속을 해왔다는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재벌 계열사 가운데 물류·광고·정보통합(SI)·건설 등 4개 업종 회사는 매출액 중 대부분을 계열사 간 거래로 올리며 쉽게 돈을 벌었다. 재벌마다 이런 이점(利點)을 노리고 똑같은 회사를 차린 결과 과당 경쟁으로 부실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몇몇 중견 그룹은 건설 계열사의 부실 때문에 그룹 전체가 법정관리에 들어가거나 채권단에 경영을 위탁하고 있다. 그런데도 재계는 자발적으로 이런 후진적 경영의 올가미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 추진은 재벌들이 스스로 변하지 못해 외압(外壓)을 자초한 것이다. 따라서 재벌들이 공정거래법 개정에 정면으로 반발하기엔 명분이 약하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가 재벌들의 편법·탈법에 대한 제재 강도를 높이더라도 그 시기와 실행 방안을 면밀하게 다듬어야 한다. 우리 경제는 2년 가까이 1% 미만의 저성장에 머물러 있고, 정부가 부동산 부양책을 내놓은 데 이어 추경예산을 편성하겠다고 하지만 민간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경기가 살아나기 어렵다. 이 상황에서 재벌을 강하게 옥죄기만 하면 투자는 더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2~3년 정도 예고 기간을 두면서 일감 몰아주기에 제동을 걸고 과징금도 매년 단계적으로 올리는 방식으로 기업이 적응할 기간을 줘야 한다. 일감 몰아주기를 지시·유도한 총수들에게 3년 이하 징역형이나 2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겠다는 것도, 먼저 과징금 액수를 늘리고 이를 시행해본 후 재벌들이 따르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검토하는 게 나을 것이다.

국내 최대 그룹의 자산 규모는 306조원(2012년)인 반면 62위 재벌의 자산은 5조1000억원에 불과하다. 62개 그룹을 같은 도마 위에 놓고 새 공정거래법을 똑같은 강도로 적용하는 게 맞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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