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북한의 대남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이하 조평통)가 우리 측의 지난 11일 대화 제의를 "교활한 술책"이라고 비난한 데 대해, 청와대는 밤늦게 "대화 제의 거부"로 규정하고 "참으로 유감"이란 입장을 내놓았다. 청와대는 기자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돌려 유감 표명이 "박근혜 대통령의 뜻"이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조평통 대변인의 발언이 나온 직후만 해도 "(북이) 대화의 문을 닫은 게 아니다. 기다려보자"고 했다가, 7시간이 흐른 뒤 "참으로 유감" 입장을 내놓은 데 대해 또 한 번 혼선이 빚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평통 "대화 제의는 빈껍데기"
북한 조평통 대변인의 입장 표명이 공개된 것은 14일 오후 2시 40분쯤이었다. 조평통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 형식을 통해 한국 정부의 대화 제의를 비판했다. '빈껍데기에 불과' '철면피' 같은 강성 용어들을 썼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앞으로 대화가 이루어지는가 마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달려있다"고도 했다.
조평통 대변인의 발언이 전해진 직후, 청와대는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외교·안보 관계자 회의를 소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부 당국자들은 "북한이 대화 제의를 완전히 거부한 것은 아니다"라며 "조금 더 상황을 두고 봐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대화 제의 후 사흘 만에 북한이 반응을 보인 만큼 신중하게 그 의도와 배경, 관련 정보를 분석하고 있다"며 "민간에서는 '대화 제의 거부'니 '의례적 발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대북 문제를 책임진 청와대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대화 제의는 빈껍데기'라고 말한 것은 대화를 하되 자신들이 원하는 형식과 내용을 취하자는 의미일 것"이라고 했다.
◇"朴대통령이 불쾌해했다"
정부의 기류가 급변하기 시작한 것은 14일 저녁부터였다. 국가안보실 차원의 회의가 끝난 뒤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가 나오면서였다. 박 대통령은 "정부를 믿었던 국민의 마음을 생각해야 한다"면서 "북한을 달래보고 할 문제가 아니라 책임 있는 태도를 촉구해야 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북한의 태도에 상당히 불쾌해했다"면서 "남북 간의 합의를 어기고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에게 심각한 고통을 초래한 데다 우리 측의 진정성 있는 대화 제의에도 어린애 장난치듯 '괴뢰' 운운하며 무성의하게 반응한 것은 도저히 그냥 넘길 일이 아니라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조평통이든 뭐든 북한 당국의 '거부'로 규정하고 '유감'을 표명한 것"이라며 "북한이 '대화 성사 여부는 남한의 태도에 달렸다'면서 떠보는 데 우리도 당당하게 대응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밤 9시 35분쯤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명의로 "북한이 우리 정부의 대화 제의를 거부한 것은 참으로 유감"이라며 "지금이라도 북한 당국은 (개성)공단 근무자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11일 대화제의 때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밤에 청와대가 뒤집었던 것의 역순으로 이번에도 정부의 판단이 흔들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