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농성 천막'이 차지했던 서울 덕수궁 대한문 옆이 이제는 '캠핑촌(村)'으로 변하게 됐다. 시위대가 이번 주말 '대한문으로 캠핑가자'는 1박2일 '캠핑 시위'를 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쌍용차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와 민주노총 등이 참여한 '희망지킴이'는 13일 오후 4시부터 300~500명이 참여하는 캠핑시위를 열겠다고 12일 밝혔다. 시위 참여자들에게는 텐트·돗자리·도시락·캠핑 의자 등을 가지고 오라고 알렸다. 대한문 일대를 '텐트촌'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12일 서울 중구 대한문 옆 비닐천막 안에서 농성꾼들이 쉬고 있다. 지난 4일 서울 중구가 농성 천막을 철거하고 화단을 설치했지만, 시위대가 화단 앞 인도에 책상·의자 등을 갖다 놓고 비닐 천막을 쳐 시민들의 불편은 계속되고 있다.

미사·기도회·법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시위대는 1박2일 캠핑뿐 아니라 오페라·밴드 공연 등도 열 계획이다. 12일 오후 7시에는 오페라 가수 3명이 등장하는 공연을 1시간가량 열었다. 이들은 오페라 사랑의 묘약과 마술피리, 토스카의 아리아와 넬라판타지아 등을 불렀다. 노랫소리는 12차선 차도를 건너 시청광장 끝에서도 들릴 정도로 컸다. 갑자기 좋은 공연을 보게 됐다며 신기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고궁 앞에서 웬 길바닥 공연을 하느냐'는 비판이 많았다. 덕수궁 관람을 온 한 20대 남성은 "고궁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려 왔는데 경내까지 노랫소리가 들려 빨리 나왔다"고 말했다. 공연을 본 150여명은 이어진 촛불 집회에도 참여했다. 시위대는 촛불 집회를 진행하다 오후 8시 50분쯤 오토바이로 몰래 천막을 들여와 오후 9시쯤 빠르게 천막을 세우고 에워쌌지만, 경찰이 즉시 천막을 수거했다. 이 과정에서 몸싸움도 벌어졌다. 13일엔 밴드공연도 예정돼 있다. '희망지킴이'는 '멋진 밴드와 함께 소리 지르고 흔들어 보는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주최 측은 13일 오후 9시 '추모의 동산'을 오르는 '야간 산행'도 계획했다. '추모의 동산'이 어딘지 명시하지 않았지만, 경찰은 서울 중구가 농성 천막을 철거한 뒤 조성한 화단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시위대가 공용물인 화단을 훼손하면 엄단할 것"이라고 밝혔고, 중구도 "화단에 아무도 불법적으로 들어갈 수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범대위가 다음 달 12일까지 집회 신고를 해놓았기 때문에 공연을 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지만, 텐트를 치는 것은 불법이므로 텐트가 하나도 반입되지 못하도록 원천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주말 내내 시위대와 공권력 간 서울 한복판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난 4일 중구가 장기 농성 천막을 철거했지만, 시위대는 대한문 옆을 '이벤트장'으로 만들며 혼잡이 더 심해졌다. 인도(人道)에 책상과 의자 등 집기를 가져다 놓고 물품을 비닐로 덮어놔 도심 미관도 더 나빠졌다. 인근 직장에 근무하는 오모(33)씨는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해야 할 대한문 옆에서 매일 집회판, 놀이판을 벌이고 있는데도 두고만 봐야 한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며 "너무 시끄럽고 길까지 좁아져 짜증을 참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실장은 "'캠핑'이라는 시위 방식은 제2의 농성촌을 설치하려고 시도하면서 공권력을 비웃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시위대의 그릇된 시위 방식이 오히려 시민들의 짜증을 부추겨 시위 자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증폭시킬 것"이라고 말했다.